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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quinas(終료)

*[2008]리뷰-'피터팬의 일생'

by fireball'Flee 2022. 9. 17.
[2008.02.22]

 

 

*피터팬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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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백년전 J.M.배리의 소설 [The Little White Bird](1902년)의 한 챕터에 잠깐 모습을 나타냈던 피터팬은,

그후 크리스마스 아동극으로 무대에 오르면서(1904년) 관객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원작자는 뜨거운 관객들의 반응을 받고 이제 그를 주인공으로 한 [Peter and Wendy](1911년)라는 소설을

다시 써서 발표한다. 그러므로 피터팬을 만든 사람은 의 독특한 캐릭터를 발견하고 열광한 당시의 대중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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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팬은 자라지 않는 아이의 대명사다. 그는 어른들의 세계를 거부한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귄터 아이히의 처녀소설 [양철북](볼커 슐렌도르프 감독이 2시간 20분의 런닝타임으로 영화화하기도 했다)의 주인공 오스카는, 3번째 생일이 되던 날, 위악스러운 어른들의 세계에 혐오를 느껴 스스로 자라지 않기로 결심한다. 만약 오스카가 자신의 의지대로 자라지 않는 능력이 있었다면, 그는 사다리에서 떨어져 척추를 다치는 행동같은 것은 하지 않았으리라.

[피터팬 신드롬]은, 임상심리학자 카일리 박사가, 나이가 들어서도 어른들의 세계로 편입되지 못하는 어른아이들을 [피터팬 증후군]으로 명명하면서 알려졌다. 어린아이의 세계에 계속 머물려고 하는 어른들이 늘어나는 것을 가리킨다. 최근에는 어린아이(Kid)와 어른(Adult)의 합성어를 써서, 키덜트족이라는 새로운 문화세대가 등장하기도 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아이같은 동심을 유지하는 사람들을 키덜트족이라고 하기 때문에 피터팬 신드롬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중요한 것은, 왜 1백여년의 세월이 지나면서도 많은 어른들은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는가 하는 것이다. 혹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어린아이였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것을 단순히 퇴행적 세계관의 표현이라고 몰아붙일 수는 없다. 어린아이는 누구나 어른이 된다. 그러면, 나이가 들었다고 저절로 어른이 되는가? 어른이 된다는 것의 책임감, 가족을 부양해야 할 의무감, 이런 부담감에서 벗어나 영원히 따뜻한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고 싶어하는 심리가, 피터팬 신드롬 속에는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순수한 세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계산적이고 이기적이며 탐욕스러운 어른들이 펼치는, 온갖 위선과 허위의 세계, 부패의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세계를 거부하고, 순수함과 아름다운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피터팬은, 단순히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해적 휴크와 만나 모험을 펼치는 그런 어린아이만은 아니다.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이라는 유쾌한 코미디를 만든 호주 출신 P.J.호건 감독의 [피터팬]은, 그동안 디즈니의 애니메이션(1953년)이나 혹은 스필버그의 화려한 액션 어드벤처 [후크](1991년)에서 변형된 모습보다 훨씬 원작에 가깝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후크 선장의 새로운 매력이다. 그는 피아노를 치고, 혼자서 고독과 외로움에 빠지는, 그리고 패셔너블한 옷을 입고 로맨틱한 사랑을 갈구하는, 유혹적인 남성으로 등장한다. 피터팬은 그냥 웬디의 마음을 독차지하는게 아니다. 후크와 치열한 경합을 벌여야 한다.

하지만 피터팬은 어린아이다. 그는 아직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다. 학교 가기를 거부하고 결국 직장을 얻어서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될 자신의 미래를 거부한다. 우리가 피터팬에 매혹당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그가 펼치는 모험담이 아니다. 정해진 세계의 규칙에 소속되기를 거부하는 것, 나의 의지로 내가 선택한 삶, 주류에서 벗어나 외롭고 고독하지만 순수함을 잃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그 결단이, 우리를 매혹시키는 것이다.

 

[피터팬]은, 상상력이 넘치는 신비로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꿈많은 소녀 웬디가 피터팬의 초대에 응하면서 펼치는 모험담이지만, 그 핵심에는 성장기 소녀의 은밀한 불안감이 깃들어 있다. 사랑에 눈을 뜨고, 가족들로부터 독립해서 자신을 보호해줄 영원한 남성을 찾고 싶은 웬디의 모습에서 우리는 [신데렐라 컴플렉스]의 원형질적 요소를 발견한다.

웬디의 곁에 있는 두 남성, 후크와 피터팬은 동일한 모습의 양면이다. 피터팬이 성장했다면 웬디의 아버지와 비슷한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직장에 나가고, 자신의 꿈은 접은채 온갖 모욕과 수모를 참으며 조직생활을 견딘다. 후크 선장은, 그런 미스터 달링의 일탈된 모습이다. [피터팬] 공연의 오랜 불문율, 웬디 아버지 미스터 달링과 후크 선장을 한 사람의 배우가 맡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번 [피터팬]에서도 소심하고 가정적인 미스터 달링과 해적 후크의 1인2역을 제이슨 아이작스가 맡아 열연하고 있다.

 

 

피터팬 곁에 있는 팅커벨은 스스로 빛을 내는 작은 요정이다. 피터팬을 사랑하지만 표현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웬디처첨 자신을 보호해줄 남성을 찾는게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빛을 낸다는 점에서 자립의지가 있는 캐릭터로 묘사되어 있다. 아쉬운 것은 [스위밍풀]이나 [우리의 릴리]의 매력적인 배우 뤼디빈 사니에의 모습이 엄지손가락만하게 축소되어 등장하는 것이다.

결국 피터팬은 혼자 남는다. 그리고 웬디는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이 세계는 변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까지 피터팬역을 남장여자가 맡은 것은 이유가 있다(세종문화회관 별관의 무대 위를 날아다니던 윤복희를 기억하는가!) p.j.호건의 [피터팬]은 12살 또래 소년(제레미 섬터 분)이 피터팬역을 연기한 최초의 작품이다. 남자아이는 결국 세계 속으로 편입되기를 거부할 수 없다는 숙명적 비애감의 표현이다. 혼자 남는다는 것의 두려움, 그러나 피터팬에게는 기존세계로 편입되는 두려움이 더 크다.

......................... [下略]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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