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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래기(葬)

*[Report]'고려장'은 없었다.

by fireball'Flee 2022. 8. 4.

2009. 1. 12.

 

 

 

 

 [2004...0909]



'고려장'은 없었다.
 


고려 시대에는 '고려장'이란 풍습이 있어서 부모가 늙고 병들면 자식들이 지게에 엎고 갖다 버리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처럼 부모에 대한 효를 강조하는 나라에서 실제로 있었던 풍습인가?
과연 고려 시대에 이 '고려장'이 있었던가?
해답부터 얘기하자면 철저히 꾸며진 이야기이다. 그것도 일제에 의해서 날조된 사실이라는 것이다.



고려장이라는 말이 구체적으로 나오는 경우는 옛날 자료 그 어디에도 없다.
고려시대까지 병자를 산속 깊이 내다 버리는 풍속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병자란 전염병 환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불효죄를 반역죄와 더불어 매우 엄하게 처벌하였다. 이런 사회에서 고려장이란 풍속이 있었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면 '고려장'이란 말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고려장'이란 말은 일제시대부터 쓰이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조차도 사악하기 그지없다.
'고려장'이란 용어를 만든 이유란 즉 우리나라 문화재를 도굴하고자 만들어낸 용어라는 것이다.
전국을 뒤져 문화적 가치가 있어 보이는 물건은 닥치는 대로 일본으로 반출하더니 급기야는 무덤의 부장품까지 노리게 되었다. 일본인이 조선인 조상의 무덤을 파헤치기가 힘들었다. 조선인 인부들은 남의 무덤을 파헤치는 일을 꺼려했는데 이는 한민족의 정서상 당연한 것이었다.


어찌 남의 무덤을 파헤친단 말인가?
예전부터 죽은 사람의 무덤에는 영혼이 있다고 믿었고 '오페르트 도굴 사건' 등에서도 보듯이 남의 무덤을 도굴하는 것은 가장 죄질이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자 일본인은 조선인의 경로효친 정신을 이용해 고려장이란 말을 만들어 냈는데 "조선에는 고려시대부터 고려장이란 게 있었다. 부모를 산 채로 내다 버리는 못된 풍습이니 여기 묻힌 사람은 자기 부모를 생으로 고려장시킨 놈이므로 이 무덤은 파헤쳐도 괜찮다." 라는 논거로 조선인 인부를 회유하여 무덤을 파헤치게 되는 것이다.

예로부터 한민족은 충효를 으뜸으로 삼고 충효의 실천을 평생의 덕목으로 삼아 실천하고자 했다. 그러므로 자신의 친부모를 산채로 버리는 행위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정신이 일제의 얄팍한 상술에 이용되어 고려장이란 용어를 만들어 내게되고 이런 용어가 버젓이 교과서에 실리는 우를 우리는 범하게 된 것이다.

하루 빨리 고쳐야할 대목이다.


[출처] : http://lambas.hihome.com/gorejang.htm
 

고려시기 전공자라면 한번쯤 '고려장'에 관한 질문을 받는다. '고려'라는 말이 들어 있어서 당연히 고려의 풍습일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려장'은 '늙은 부모를 산 채로 내다버리던 악습'이다.

또한 고려장을 했던 곳이라고 알려진 무덤들도 여러군데 있어, 의심의 여지없이 고려시기에 일반적으로 행해졌던 풍속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과연 고려의 장례풍속으로 사람들에게 널리 인식되어 있는 고려장의 실체는 무엇일까? 고려장이 없어지게 된 내력을 알려주는 이야기는 두 가지로 구전되고 있다. 하나는 중국에서 낸 문제를 숨겨놓은 늙은 아버지의 힘을 빌어 해결하고 고려장을 폐지하게 되었다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늙은 아비를 산 채로 져다버린 아버지가 내버린 지게를 아들이 후일 다시 쓰기 위해 가져옴으로써 그의 아버지로 하여금 불효를 깨우치게 했다는 이야기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러한 이야기는 사실은 다른 나라에서 전래된 이야기이다.

앞의 이야기는 불교경전인 『잡보장경(雜寶藏經)』의 기로국연(棄老國緣)조의 설화와 유사하고,

뒤의 이야기는 중국 『효자전(孝子傳)』의 원곡(原穀)이야기와 유사하다.

 

원곡이야기를 보도록 하자.

원곡이란 사람에게는 늙은 할아버지가 있었다. 원곡의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싫어하여 갖다 버리려고 생각하였다. 15살 된 원곡은 울면서 말렸으나 아버지는 듣지 않았다. 드디어 수레를 만들어 갖다버렸다. 원곡이 따라가 수레를 다시 가져오니, 아버지가 "이처럼 흉한 것을 무엇에 쓰려고 하느냐?" 하였다.

원곡이 말하기를 "다음에 아버지가 늙으면 다시 만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아버지는 부끄러움을 느끼며 깨달아, 자신의 아버지를 다시 모시고 왔다.이후 잘 봉양하여 마침내 효자가 되었다.

 

또한 '기로국이야기'는 우리 나라에 수용되면서 불경에 있는 천신(天神)이 중국으로, 기로국이 고려국으로, 기로의 풍습이 고려장(高麗葬)으로 변용되어 고려시기에 실재로 존재한 풍속처럼 믿어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기로국이야기는 몽고의 민담에서도 나타난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방 곳곳에 고려장터로 알려진 무덤들은 무엇일까.

고고학계의 발굴결과로는 고려장과는 무관한 석관묘(石棺墓)나 석실분(石室墳)으로 판명됐다.

이와 같이 고려장은 고려의 장례풍속이 아니었다.

 

고려시기는 불효죄를 엄격하게 처벌하였다.

『고려사』에는 "조부모나 부모가 살아있는데 아들과 손자가 호적과 재산을 달리하고 공양을 하지 않을 때에는 징역 2년에 처한다"고 하였다. 또한 국왕이 효행이 있는 사람과 80살 이상 된 노인들에게 잔치를 베풀어주고 선물을 주는 기사가 자주 보인다.

이렇게 부모에 대한 효도를 강조하는 사회에서 늙은 부모를 내다버리는 풍습이 있었다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반대로 노인에 대한 공경을 강조하기 위해 효자전의 원곡이야기와 기로국이야기를

마치 우리 나라, 특히 고려의 실제 풍습인 양 바꾸어 전승시킨 것이라고 하겠다.

이우석(부천대 강사, 중세1분과)

 



 

나라야마 부시코

 

 

*고려장 [高麗葬]

고구려 때의 장사 지내는 법. 노쇠한 사람을 광(壙;墓室) 속에 옮겨 두었다가 죽으면 거기 안치하고 금은 보화를 넣은 다음 돌로 쌓아 봉토하였다고 한다. 불필요해진 노인을 버리던 좋지 못한 습속이므로, 고려장을 없애는 줄거리의 구전설화가 전국에 분포되어 있다.

이 설화는 <기로전설(棄老傳說)>, <고려장이 없어지게 된 유래>라고 불린다. 내용은 풍습대로 70세 된 노인을 아들이 지게에 지고 산중에 버리고 돌아을 때에, 그를 따라왔던 그의 어린 아들이 그 지게를 다시 가져 오자 그는 왜 지게를 가지고 오는가를 물었다. 어린 아들이 아버지도 나이가 차면 이 지게에 지고 와서 버려야 하기 때문에 가져온다고 대답했다. 그 말에 그는 뉘우치고 늙은 아버지를 다시 집에 모시고 가서 잘 봉양했고, 그 후로 고려장이 없어졌다는 이야기이다.

또 고려장을 할 때가 되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어 아버지를 버리지 않고 봉양하던 중, 중국에서 출제한 문제로 나라가 고민에 쌓이자 아버지가 이를 풀어 제도화된 고려장을 나라에서 폐지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중국·중동·유럽에도 유사한 설화가 전하며, 따라서 고려장 형식의 장례가 전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곧, 당시의 인간에 대한 척도가 육체적인 힘이나 능력의 차이에 의하여 구분되는 수준이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영화 고려장(1963)http://www.knua.ac.kr/cinema

 

*기로전설(棄老傳說)’*

늙은 부모를 산 채로 버리던 악습이 없어지게 된 내력에 관한 설화. ‘고려장이 없어지게 된 유래’, ‘기로전설(棄老傳說)’이라고도 불리며, 전국에 널리 분포되고 있다. 이야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에 사람이 나이가 들면 그를 산중에 가져다 버리는 풍습이 있었다. 한 아들이 자신의 아버지가 일흔 살이 되었으므로 늙은 아버지를 버리기 위하여 그를 지게에 지고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서는, 약간의 음식과 늙은 아버지를 지고 왔던 지게를 놓아둔 채 되돌아 가려고 하였다.
그러자 그를 따라왔던 그의 어린 아들이 그 지게를 다시 지고 오기에, 그는 아들에게 왜 지게를 다시 지고 오느냐고 물었다. 어린 아들이 “저도 아버지가 늙으면 이 지게에 지고 와서 버려야 하기 때문에 가져왔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 말에 그는 크게 뉘우치고 늙은 아버지를 다시 집으로 모셔 간 뒤에 잘 봉양하였다. 그로부터 고려장이라는 악습은 없어졌다고 한다.

고려장이 없어지게 된 내력을 말한 설화 중에 널리 전승되는 것으로서 이와는 다소 다른 형태의 이야기도 있다.

고려장이 국법으로 정해져 있는 나라에 사는 어느 효자는 아버지(또는 어머니)가 늙어 고려장을 할 시기가 되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어서 아버지를 숨겨 두고 봉양하였다.그러던 중 중국에서 어려운 문제를 내어 풀기를 요구해 왔으나, 아무도 풀지 못했으므로 온 나라가 근심에 싸였다. 그 때 늙은 아버지가 문제의 해답을 알려주어서 무사히 어려움을 해결하자, 나라에서는 이로부터 늙은이도 쓸모가 있음을 깨닫고 악습을 폐지하였다는 것이다.

앞 이야기는 불전설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잡보장경 雜寶藏經≫ 기로국조(棄老國條)의 설화와 유사하며, 뒤 이야기는 중국 〈효자전 孝子傳〉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 설화는 중동이나 유럽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된 유형으로 볼 수 있다.

두 설화는 고려장의 폐지라는 동일한 결말을 보여 주지만, 그 방법은 전혀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앞 이야기가 아들의 불효를 강조하면서 손자의 지혜를 해결의 계기로 삼고 있는 것에 비하여, 뒤 이야기는 노부모의 지혜에 의하여 국가적 문제가 해결되면서 아울러 고려장도 폐지된다. 따라서, 두 이야기는 지혜를 내는 주체자는 다르지만, 지혜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공통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야기 속에 나타나는 노인을 버리는 풍습은 인간을 육체적인 힘이나 능력 위주로 평가하는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반박하는 아들의 재치나 노인의 지혜는 인간의 존엄성과 정신적 가치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것으로 깊은 교훈을 담고 있다.

≪참고문헌≫ 朝鮮童話大集(沈宜麟, 漢城圖書, 1926), 朝鮮民族說話의 硏究(孫晉泰, 乙酉文化社, 1947), 韓國昔話の硏究(崔仁鶴, 弘文堂, 1975), 慶北民譚(金光淳, 螢雪出版社, 1978), 全北民譚(崔來沃, 螢雪出版社, 1979), 韓國口碑文學大系(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0∼1988).(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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