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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일鄭씨'문계공파

*[풍수]낙랑후 지백호之묘

by fireball'Flee 2022. 7. 28.

2011. 4. 22.

 

 

- 신라개국공신 -
*낙랑후 지백호지묘*

 

 

경주 금오산이 남쪽으로 낙맥한 기슭에 신라 개국공신 정씨시조인 낙랑후 지백호의 묘소를 비롯해 여러 위의 묘단이 모셔져 있다. 시조의 자는 인세(仁世)이고 시호(諡號)는 문화(文和)로 기원전 117년 갑자년에 진한의 사로육촌 중 취산진지 촌장이었다.

기원전 69년 임자년 3월에 다섯 분의 촌장과 더불어 양산언덕 라정에서 하늘이 주신 신인을 얻어 수양해 13세 되던 57년 갑자 4월에 육촌장이 합의해 왕으로 추대하니 이분이 곧 신라 첫 왕 박혁거세이며 국호는 서라벌이라 했다.

 

  

 

<< 묘비 & 백운재 >>

서기 32년 임진 신라 유리왕 봄에 진지촌을 본부로 개창함과 동시에 낙랑후를 봉하고 정씨로 성을 하사하니 즉, 공의 현손 휘 동충의 때이며 서기 516년 병진(신라 법흥왕 31)에 시호를 문화(文和)로, 서기 656년 병신(신라 태종 무열왕 3)에 감문왕으로 추봉했다. 특히 육부촌장 중에 유일하게 2천여 년 동안 묘소가 보존되어 오면서 매년 음력 10월 1일에 전국 후손이 모여 제향을 올리고 있다.

이 곳은 영남의 팔대명산 가운데 한 곳으로 떡을 찌는 시루형의 명당이다. 천자만손(千子萬孫)에 부귀영화(富貴榮華)가 누대(累代)로 이어진다는 명당 중의 명당이다.

풍수에서 명당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으로는 이기풍수와 형기풍수로 나눌 수 있다. 이기란 문자 그대로 형상의 논리보다는 변증논리에 근거를 둔 것이다. 또한 패철이라고 부르는 나경의 법수로서 이루어지는 재혈에 중점을 두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풍수지리에 있어서 형기를 무시한 이기는 생각할 가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기의 기본도 모르고 형기만을 주장해서는 안 되므로 형기론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 이기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반해 형기론은 산의 흐름을 그대로 살펴 그 형상을 정확하게 판단하고자 하는 것으로 많은 풍수학자들이 형기를 연구하고 있으며, 풍수지리학에 근간이 되는 이론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많은 풍수이론으로 박학다식한 수준에 와 있어도 산(용)의 흐름과 지세를 정확하게 살피는 안목이 없다면 풍수지리학에 있어서 핵심을 빠뜨리는 일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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