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 21.
[사순제5주일]
'십자가는 하느님 정의와 자비의 만남'

----------- Fr. 손무진 -----------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교서 ‘제삼천년기’에서 “모든 희년의 기쁨은 무엇보다도 죄의 용서에 기초한 기쁨, 회개의 기쁨입니다”(32항)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용서하시는 하느님 안에서 우리를 회개의 기쁨으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들킨 여인을 이용하여 예수님과 한 판 승부를 벌이고자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곤경에 빠트리고자 한 여인의 수치심 따위에는 전혀 생각지 않고 있습니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요한 8:4)
간음한 여인을 예수님께 데려온 것은 그들의 이중적인 계략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그여인을 ‘돌로쳐라’ 하신다면은 사형권한이 없는 유대인으로서 로마법을 어기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당신의 ‘자비’는 위선에 불과하게 될 것입니다. 다른 한편 ‘돌려보내라’고 하신다면은 모세법을 어기는 것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느 경우에나 그들의 술책에서 벗어 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참 하느님이시며 참 인간 이십니다. 당신께서는 하늘의 지혜로움으로 이 난관을 넘어서십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요한8:7)
죄 없는 자만이 이웃을 판단 할 수 있다는 새로운 율법의 선언이셨습니다. 참으로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방법으로 ‘정의와 자비’의 완전한 조화를 드러내 주셨습니다. 이로 인하여 사람들은 나이가 많은 이들부터 돌멩이를 떨어뜨리고서 떠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정의를 무시하고 자비만을 이 여인에게 드러내신 분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그녀의 죄 값을 치룰 것입니다. 즉, 그녀를 대신해서 단죄를 받으실 것이기 때문에 단죄하지 않으셨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황금 송아지를 숭배하는 것을 보고서 석판을 깨뜨려 버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깨어진 석판위에 당신의 피를 뿌림으로서 새롭게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당신께서 이루실 미래의 결과를 이 여인에게 미리 보여 주셨습니다.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사랑의 능력입니다.
우리의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맙시다. 십자가를 보면서 우리는 죄가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 죄 값을 대신한 당신의 십자가는 하느님의 정의와 자비의 절묘한 만남입니다. 용서는 당신의 대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은총의 시기입니다.
하느님의 용서는 우리에게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당신께서 대가를 치루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의 해방을 자유라는 이름으로 부르셨습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정녕 자유롭게 될 것이다.”(요한 8:36) 용서를 통하여 진정한 구원의 기쁨을 이 시기에 만납시다. 아멘.
-------------------------------------------------------------------------------------- 손무진 사도요한 - (두류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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