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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래기(葬)

*[books]'Stiff'- 산자를 위한 죽은자의 ‘마지막 소임’

by fireball'Flee 2022. 7. 27.

2008. 1. 29. //  [출처]http://mx.khan.co.kr 경향신문 2004.03.13

 

 

*Stiff*

- 산 자를 위한 죽은 자의 ‘마지막 소임’ -

 

"스티프(Stiff)" (메리 로취·/ 파라북스)

책을 읽은 것 같기도 하고, 계속 냄새만 맡은 것 같기도 한 기분이다. 둘의 경계는 정말이지 분명치 않다. ‘시체’라는 뜻의 이 책 ‘스티프(stiff)’에는 진하고 질리는 냄새가 진동한다.

시체, 부패, 해부, 아니 그보다 더 원색적인 용어를 이렇게 많이 사용하고도 이 책은 의학교재가 아니다. 낯설고 생소하고 혐오스러울 수 있는 얘기가 저자의 손을 거치면서 유쾌한 정보로 돌아섰다. 죽음 이후의 인간의 몸에 대해 엄숙주의를 걷어내고 ‘좀더’ 실용적이고 ‘좀 덜’ 감정적으로 바라보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 개인을 놓고 보자면 죽음은 삶의 끝이고, 삶의 관계를 단절하는 별리(別離)임이 분명하다. 몸은 사람의 일생을 지탱하는, 36.5도의 훈기 넘치는 집이지만, 영혼이 떠난 육신은 그저 폐가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폐가로서의 그 주검에 온갖 금기를 걸어두고 갖가지 종교적 의례를 곁들여 이별을 고했다.

 

 

 

그러나 모든 사체가 박테리아에 의해 분해돼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만 겪었다면 현대의학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종교 제의로서가 아니라 과학실험의 제물로 바쳐진 시신들이 있었기에 생명과학의 미로는 조금씩 열릴 수 있었다. 그렇다고 저자가 이 책에서 ‘사자(死者)들의 고귀한 희생’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신을 둘러싼 온갖 엽기적인 과거 및 현대사들을 소개한다. 절도, 음모, 강취, 매매 같은 범죄 행위도 있고 기 질리게 하는 갖가지 사체 실험, ‘몬도가네’식 식문화도 등장한다. 가령 19세기 영국 런던의 해부학교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시체 들치기 업자들 덕이었다. 시체 수요가 넘쳤던 1828년에는 들치기를 부업으로 하는 사람이 런던에만 200명을 웃돌았다고 한다. 무덤에서 시체를 파내려는 해부학자들과 철제 관으로 무장해 이를 막으려는 일반인들의 숨바꼭질은 어이없는 웃음을 선사한다.

 

 

 

자동차의 충돌, 총상, 폭발 등으로 발생하는 인간의 부상 연구에 사체가 이용되고 있다는 얘기는 또 어떤가. 저자는 “사체 연구를 통해 차량의 안전장치가 개선된 덕에 1987년 이후 매년 8,500명의 생명을 건지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적고 있다. 얼굴에서 에어백이 터지는 실험에도 사체가 이용됐다. 그 사체 1구당 매년 147명이 정면충돌에서 살아남았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은 6,000명의 병사들에게 새로 개발한 방탄복을 지급하고, 그들의 생존 정도를 표준방탄복을 착용한 병사들과 비교하기도 했다.

 

 

 

해부실습실 광경이나 시신이 부패하는 과정에 대한 묘사는 속을 불편하게 할 만큼 생생하고 장황하다. 그는 저널리스트로서 직접 현장을 찾아가 캐묻고 세밀히 관찰했다. 사실 확인에 대한 의욕이 넘친 나머지 중국 하이난섬까지 날아가기도 한다. 죽은 자의 엉덩이살을 베어내 만두의 재료로 쓴다는 로이터 기사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뒷면에 적힌 126권의 참고 문헌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인상적이다. ‘시체보존처리술’ ‘죽음의 화학작용’ ‘죽은 자들을 위한 발언’ ‘생매장’…. 메리 로취의 입담과 유머가 아니었다면 이 책은 교양서가 아니라 공포 스릴러물로 분류됐을지도 모른다.

 

 

‘스티프’를 관통하는 철학은 인간의 죽음이 단지 증발이나 유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시신은 박테리아나 구더기, 딱정벌레에게 먹히는 자연분해의 과정을 겪지만 그 전에 의사의 해부용 메스에 맡겨져 마지막 ‘소임’을 다할 수도 있다. 저자는 장기이식 문제도 그런 관점에서 풀어낸다.

 

오늘날 우리는 인간 죽음의 물화(物化) 현상을 겪고 있다. 사망률, 전쟁, 사고, 재난에서 죽음은 숫자로 환원되었다. ‘스티프’는 시체해부, 시체실험 얘기를 통해 생명의 고귀함을 역설적으로 전한다. 그래서 330여쪽을 읽는 동안 내내 따라다닐 역한 냄새는 가히 견딜 만하다. 권루시안 옮김. 1만4천5백원.

 

 

 

<조장래기자 joy@kyunghyang.com">jo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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