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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래기(葬)

*[裝禮] *상.장례 절차 - 전통식(1)

by fireball'Flee 2022. 7. 25.

*[裝禮] *상.장례 절차 - 전통식(1)

2006. 12. 18.

 

 

 

 

*상.장례 절차 - 전통식(1)

 

---------------------------------------- [[목차]] ---------------------------------------

 

1. 초종

2. 습 과 염

3. 성복과 상식

4. 복제도

5. 조상

6. 치장

7. 우제

8. 졸곡

9. 부제

10. 소상

11. 대상

12. 담제

13. 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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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리타 꿈 ~

 

1. 초종

초종(初終)이란, 보통 초상(初喪)이라는 말을 예문(禮文)에서 쓰는 말이다. 그 본래의 뜻은 운명(殞命)에서 졸곡(卒哭)가지를 말하지만, 일반적으로 말할 때에는 운명에서 전(奠)까지를 의미한다.

 

 

1) 천거정침(遷居正寢)
환자의 병세가 위급해 도저히 회춘(回春)할 가능성이 없으면 환자를 정침(안방)으로 옮긴다. 그리고 집 안팎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환자를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힌다. 환자의 머리는 동쪽을 향하게 하여 북쪽 문 밑에 편안하게 모신다. 네 사람이 조용한 가운데 환자의 팔과 다리를 주무른다. (천거정침(遷居正寢)은 가주(家主)에만 해당되고 가주 이외의 사람은 자기가 거처하던 방으로 옮긴다)

 

 

2) 유언(遺言)
환자의 병세가 위급한 상태에 빠지면 가족들은 침착한 태도로 주위를 정돈하고 운명을 기다린다. 이때 병자에게 물어볼 말이 있으면, 병자가 대답하기 쉽도록 내용을 간략하게 묻고 그 대답을 기록하거나 녹음을 한다. 병자가 자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것은 평소에 미진한 일이나 사후에라도 실행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훈계나 교훈, 그리고 재산 분배에 대한 유언일 것이다. 유언은 원래 자필로 쓰는 것이 원칙이지만 시간적인 여유나 기력이 없을 때는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다른 사람이 대리로 써도 된다. 녹음을 해두면 생존시의 육성을 들을 수 있어 한층 더 뜻깊을 것이다. 유언은 이 세상을 영원히 떠나는 사람의 마지막 귀중한 말이므로 자손들이나 친지들은 마땅히 그에 따라야 한다.

 

 

3) 임종(臨終)
임종(臨終)이란 운명(殞命)이라고도 하는데 환자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것을 말한다. 자손들이나 친지들은 환자의 운명을 정중하고 경건하게 지켜보아야 한다. 그런데 남자의 임종은 여자가 지키지 않으며, 여자의 임종은 남자가 지키지 않는다. 그러나 자손일 경우에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4) 속광
환자의 손과 발을 잡고 환자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것을 분명하게 알기 위해, 햇솜을 환자의 코 밑에 대놓고 환자의 숨을 그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을 속광이라고 한다. 솜이 움직이지 않으면 완전히 숨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환자가 완전히 숨을 멈추지 않았을 때 곡성이 요란하면, 운명하는 이가 순간이나마 마음이 불안하고 정신이 혼란할까 염려되므로 가족은 울음을 참고 조용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속광한다.

 

 

5) 수시(收屍)
숨이 끊어지면 눈을 감기고 준비한 햇솜으로 입, 코, 귀를 막은 후에 머리를 높여 반듯하게 괸다. 가족들은 자연 시신을 붙들고 울게 되는데, 이때 친척 가운데 초종의 범절에 익숙한 사람이 가족의 울음을 멈추게 하고, 시신이 굳기 전에 손과 발을 주물러서 펴게 하고 수시(收屍)를 한다. 수시는 문을 닫고 하고, 시체를 안치한 방에는 불기운을 없애고 바닥에 짚을 깐다. 백지로 시신의 얼굴을 덮고, 백지나 베로 양쪽 어깨를 반듯하게 묶는다. 그 다음 턱을 괴고, 양손을 배 위에 올려 놓는데 남자는 왼손을, 여자는 오른손을 위로 한다. 백지 또는 베로 시신의 자세가 어그러지지 않게 팔과 다리를 묶는다. 그런 다음 시신을 시상(屍床) 위에 옮겨 누이고 홑이불로 덮은 후에 병풍이나 가리개로 가린다. 그 앞에 고인의 영정을 모시고 양쪽에 촛불을 밝힌 다음, 중앙에 향을 피우고 곡을 한다. ( 이 수시 절차를 소홀히 하면 손발과 몸이 뒤틀리고 오그라드는 경우가 생기므로 정성을 들여야 한다)

 

Officer's 아들

 

6) 고복(皐復)
고복(皐復)을 복(復), 초혼(招魂), 또는 "혼을 부른다"라고도 한다. 죽은 사람의 흐트러진 혼을 불러 돌아오게 한다는 뜻으로, 시신을 보지 않은 사람이 지붕 위로 올라가는데 남상(男喪)일 때는 남자가 올라가고, 여상(女喪)일 때는 여자가 죽은 사람이 입던 속적삼을 들고 올라간다. 동쪽 끝으로부터 지붕의 중앙에 올라가서, 왼손으로 그 옷의 깃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옷의 허리를 잡고 북쪽을 향해 휘두른다. 이때 크고 긴 목소리로 "00도 00군 00면 00리 학생 000공(公) 복 복 복!" 하고 외친다. 죽은 자가 관작(官爵)이 있으면 "00관(官) 0공(公)"이라 하고, 죽은 자가 여자일 때는 남편의 관작을 좇아 "00부인 0씨"라 하고, 관작이 없으면 "유인(孺人) 0씨"라고 한다. 이와 같이 고복할 때는 상주 이하 모든 가족이 울음(곡)을 멈추어야 한다. 이것은 떠나려는 혼이 다시 시신으로 돌아와 되살아나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렇게 해도 살아나지 않으면 정말로 죽은 것이 확인되는 것이다. 고복한 후의 옷[復衣]은 지붕 위에 그대로 놓거나 시체의 가슴 위에 올려 놓는 등, 각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다. 또 지방에 따라서는 주소와 관작과 성을 말하지 않고 "복!복!복!" 하기도 하고, "돌아보고 옷이나 가지고 가시오!"라고 하기도 한다. 죽음이 확인되고 사잣밥을 놓을 때에는 먼 하늘을 쳐다보고 고인을 부르며 땅을 치고 곡을 한다.

 

 

7) 사잣밥
고복을 한 다음 밥상에 밥 세 그릇과 술 석 잔과 백지 한 권, 명태 세 마리, 짚신 세 켤레, 약간의 동전을 얹어놓고 촛불을 켜서 뜰 아래나 대문 밖에 차려놓는데, 이것을 사잣밥이라 한다. 염라대왕이 사자(使者)를 시켜 사람의 목숨을 거두게 하는 것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에 그 저승사자를 대접해 편안히 모셔가게 해달라는 뜻이다.

 

 

8) 발상과 상주
고복이 끝나면 아들, 딸, 며느리, 즉 자손들이 머리를 풀고 곡을 하며 옷을 갈아입는데, 남자는 심의(深衣)를 입고 섶을 여미지 않으며 여자는 흰옷으로 갈아입고 모두 맨발로 신을 신지 않는다. 이와 같이 상제의 모습을 갖추고 초상 난 것을 밖에 알리는 것을 발상(發喪)이라 한다. 발상과 동시에 상중(喪中), 기중(忌中) 또는 상가(喪家)라고 써서 문밖 또는 길목에 붙인다. 이렇게 초상이 나면 예제(禮制)에 따라 상주(喪主), 주부(主婦), 호상(護喪), 사서(司書), 사화(司貨)를 정한다. 상주는 상사(喪事)의 중심이 되는 상인(喪人)을 가리키는데, 죽은 사람의 맏아들이 상ㅇ주가 되는 것이 원칙이다. 맏아들이 없고 맏손자가 있을 때는 작은 아들이 있어도 맏손자가 상주가 되고, 상주가 된 장손을 승중(承重) 또는 승중손(承重孫)이라 한다. 주부는 여자 상주로서 아내가 대신한다. 그리고 죽은 자의 아버지가 살아 있으면 장성한 아들이 있더라도 아버지가 주상이 되며, 아내가 죽었을 때는 남편이 주상이 된다.

 

 

9) 호상과 사서, 사화
호상이란 발상이 끝나면 상주를 도와서 상사의 모든 일을 처리하는 사람으로서, 상사를 알리는 일에서부터 치상(治喪)의 범절까지를 주관한다. 그러기에 호상은 상가의 모든 것을 잘 아는 친척 또는 친구 가운데에서 상례에 밝고 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선임한다. 사서는 상사에 관계되는 모든 문서를 맡은 자이며, 사화는 장재(掌財)라고도 하며 장례를 치르는 데 있어 물품과 금전의 출납을 관리 담당하는데, 친척이나 친지 중에서 선임한다. 사화가 일을 진행시킬 때는 공책을 세 권을 만들어 놓고, 한 권에는 물품이나 금전의 출납을 기록하고, 다음 한 권에는 조문객의 부의금을 기록하는 책으로서 그 책의 이름을 부상(父喪)일 때는 조객록(弔客錄)이라 쓰고, 모상(母喪)일 때는 조위록(弔慰錄)이라고 쓴다.

 

 

10) 전(奠)
전(奠)이란 고인이 살아 있을 때와 같이 섬기기 위해 술, 과일 등을 차려 놓은 것으로, 집사(執事)가 포(脯)와 식혜(食醯), 과일 등을 탁자위에 놓으면 축관(祝官)이 손과 술잔을 씻고 술을 따라 올린다. 술은 잔에 가득 차게 부어 시신의 오른쪽 어깨 가까운 곳에 놓는다. 이것을 염습이 끝날 때까지 날마다 한 번씩 행한다. 집사와 축관이 전을 올리는 이유는 주상은 슬프고 애통하므로 자신이 올리지 못하기 때문에 집사가 대행하는 것이다. 단 절은 하지 않는다.

 

 

11) 복인(服人)
복인(服人)의 범위는 고인의 8촌 이내의 친족으로 한다. 복인들 중 남자 상제들은 흰 두루마기를 입되 부상이면 왼쪽 소매, 모상이면 오른쪽 소매에 팔을 꿰지 않고 소매를 빼서 뒤로 넘긴다. 그리고 앞섶을 여미지 않은 채 안옷고름으로 조금 매기만 한다. 여자 상제들은 머리를 풀고 흰 옷을 입는다.

 

 

12) 치관(治棺)
호상이 목수나 관장(棺匠)을 시켜 나무를 골라 관을 만들게 한다. 나무 중에는 유삼(油衫)이 제일이고 잣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그리고 오동나무순이다. 관재(棺材)는 천판(天板), 지판(地板)을 한 장씩, 사방판(四方板) 네 장을 준비한다. 두께는 세 치(약9센티)나 두 치반(약 7.5센티)으로 하며, 높이와 길이는 시신의 길이와 부피에 맞도록 한다. 칠성판은 염습할 때 시신 밑에 까는 널빤지로 두께가 다섯 푼이라 한다. 옛날에는 부모가 회갑이 지나면 이미 관재를 준비하고 옷칠을 하여 소중히 보관했다가 사용하는 예가 많았다.

 

 

13) 부고(訃告)
부고(訃告)는 호상이 상주와 의논해 친척과 친지에게 신속하게 전한다. 부고장은 백지에 붓글씨로 쓰는 것이 정중하지만 장수가 많을 때는 인쇄로 하고 봉투만 붓글씨로 쓰는 것이 좋다. 부고를 알리는 방법으로는 전인 부고(專人訃告 : 직접 사람이 전하는 부고), 우편 부고, 신문 부고가 있다.
사후의 칭호는 부고를 보내는 것이므로 상주의 아버지면 대인(大人), 어머니면 대부인(大夫人), 할아버지면 왕대인(王大人), 할머니면 왕대부인(王大夫人), 아내일 때는 망실(亡室) 또는 합부인(閤夫人), 동생일 때는 망제(亡弟)라 쓴다.

 

나인, 과부의 아들

 


2. 습 과 염

습염(襲殮)은 입관하기 전에 시신을 깨끗이 닦고 수의(壽衣)로 갈아입힌 후 입관(入棺)할 때까지의 절차로서 염습 또는 염이라고도 한다. 습과 염은 같은 날에 병행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고례(古禮)에는 습과 염을 분리해 행했고, 염은 다시 소렴(수의를 입히는 절차로서 사망 이튿날)과 대렴(사망 사흗날 아침 입관할 때까지의 절차)으로 구분한다.


1) 습(襲)
습이란 향탕수(香湯水)로 시신을 정결하게 씻기는 것을 말한다. 향탕수는 향나무나 쑥을 삶은 물이다. 습은 운명한 이튿날 하는 것이 원칙이나 당일에 하기도 한다. 습을 시작하기 전에 반함(飯含)의 준비, 습전(襲奠)의 준비, 그리고 다음에 행해야 할 소렴 준비를 해야 한다.

★ 습하기 위한 준비
① 가까이에 있는 한적하고 깨끗한 곳에 조그마한 구덩이를 파놓는다. 이는 습이 끝났을 때 습에 사용한 물건들을 거두어 파묻기 위해서다.
② 향탕수 세 그릇을 준비한다. 한 그릇은 머리를 감기고, 한 그릇은 시신의 상체를, 또 한그릇은 시신의 하체를 씻기는 데 쓰인다.
③ 새솜과 깨끗한 수건 세 장을 준비해 머리, 상체, 하체를 씻기는데 각각 한 장씩 사용한다. 새솜으로 대용하기도 한다.
④ 시신을 씻긴 후 물기를 닦아내기 위해 새 수건 두 장을 준비하여 상체와 하체에 각각 사용한다. 이 수건은 깨끗한 명주나 베로 만든다.
⑤ 머리를 빗기는 빗.(남녀 공용)
⑥ 주머니 다섯 개를 명주나 비단으로 만든다. 머리를 감겨 빗질할 때 나오는 머리카락을 종이에 싸서 주머니 하나에 넣고, 양쪽의 손톱과 발톱을 깎아 각각의 주머니에 따로 넣는다. 대렴한 후에 이 주머니들을 이불 속에 넣는다.
⑦ 검은 비단으로 머리카락을 묶은 댕기를 만든다. 이를 조(組)라고 한다.(여자용)
⑧ 뽕나무나 버드나무를 네 치 길이로 잘라 양쪽은 넓적하게 하고, 가운데는 조금 가늘게 깎아 비녀를 만든다.(여자용)
⑨ 패(貝)를 세 개 준비한다. 패란 금이나 돈을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구멍 없는 구슬을 대신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⑩ 잘 씻은 쌀을 조금 준비한다.
⑪ 버드나무를 깎아 숟가락과 젓가락을 만든다.
⑫ 눈을 가리며 멱건(멱巾)이라는 수건을 베나 명주로 만들어서 준비한다.
⑬ 시자(侍者)가 손을 씻을 물을 준비한다.

 

위와 같은 준비가 끝나면 시자는 손을 씻고 향탕수를 가지고 들어온다.

이때 상주와 상인은 장막 밖으로 나와 북쪽을 바라보고 서 있는다.
목욕시킬 때 남자시신은 남자가, 여자 시신은 여자가 시자가 되어 씻긴다. 먼저 향탕수로 머리를 감기고 물기를 닦은 다음, 빗질하여 머리를 올려 조(組)로 묶고 비녀를 꽂는다. 시신의 상체를 정결하게 씻고 닦은 다음, 하체를 씻고 닦는다. 이때 쓰는 향탕수와 수건은 앞에서 준비한 대로 각각 따로 쓴다. 멱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손톱과 발톱을 깎고 빗질할 때 빠진 머리카락을 주워 주머니에 넣어둔다.
이렇게 습이 끝나면 시상을 임종했던 방으로 옮기는데, 머리를 동쪽으로 향하게 한다. 남은 향탕수와 수건, 솜, 빗 등을 거두어 구덩이에 묻고 소렴을 기다린다.

 

 

2) 습전(襲奠)
습전(襲奠)이란 죽은 후 처음 올리는 제사를 말한다. 포, 혜, 과일을 상에 차려 시신의 동쪽에 놓고, 짚자리를 깐다. 상주와 아들들은 시신의 동쪽에 자리하고, 주부와 여자들은 시신 서쪽에 짚자리를 깔고 앉는다. 좌포우혜(左脯右醯)라 하여 포는 좌측에, 혜는 우측에 놓으며, 집사자가 손을 씻고 술을 부어 시신의 오른쪽 어깨 가까이에 놓으면 상제들은 절을 하지 않고, 앉거나 서서 애통한 곡을 한다.
앉는 좌석의 순서는 3년복을 입은 남자들 뒤로 남자들만 차례로 기년복(朞年服), 대공복(大功服), 소공복(小功服)의 순으로 서쪽을 향해 앉는다. 여자들도 이에 준하며, 서쪽에 자리하여 동쪽을 향해 앉는다. 다른 성(姓)의 남자들은 포장 밖의 동쪽에, 부인들은 서쪽에 앉은 것이 옛ㄴ라 관습으로 되어 있다.

 

 

3) 반함(飯含)
반함(飯含)이란 염을 하기 전에 시신의 입에 구슬 또는 엽전과 물에 불린 쌀을 떠넣어 주는 것을 말한다. 상주가 손을 씻고 애통하게 곡을 하면서 남쪽으로 나가서 구슬이든 상자를 가지고 돌아오면, 시자가 불린 쌀 그릇에 버드나무로 만든 숟가락을 꽂고 따라 들어간다. 그러면 축관은 구슬 상자를 받아 시신의 서쪽에 올리고, 쌀을 받아 북쪽에 올린다.
베개를 치우고 시신의 입을 벌려 숟가락으로 쌀을 떠서 입의 오른쪽에 먼저 넣고, 이어서 입 왼쪽 끝 입 한가운데에 세 번 떠넣는다. 그리고 구슬이나 엽전을 같은 순서로 넣는다.
이를 패(貝)라 하는데, 대부(大夫) 이상의 벼슬을 한 사람에게는 주옥을 썼고, 그 이하는 구멍이 없는 보통 구슬을 썼다. 서민들은 조개 껍데기나 엽전을 썼다. 쌀을 넣는 이유는 먼 저승까지 갈 동안의 양식이라 믿는 데에서 기인한 것이며, 첫 번째 숟가락으로 떠넣으면서 "백 석이오." 두 번째는 "천 석이오." 세 번째는 "만 석이오."라고 하면서 쌀을 떠넣는다. 패는 저승까지 갈 때 노자(路資)가 필요할 것이라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4) 소렴(小殮)
소렴(小殮)은 반함이 끝나고 나서 시신에 수의(壽衣)를 입히는 절차를 말한다. 이때 준비할 수의는 다음과 같다.

①복건(복巾) : 검은 명주로 만든 것으로서 머리를 싸서 덮는 수건
②두건(頭巾) : 머리에 씌우는 수건
③망건(網巾) : 머리카락을 싸는 것으로, 검정색 비단으로 만든다.
④멱목(멱目) : 눈을 가리는 것인데, 겉은 자주색, 안은 검은색 명주로 만든다. 사방 한 자 두치(약35센티), 네 귀에 끈을 단다.
⑤충이(充耳) : 새솜으로 대추씨만하게 만들며, 귀를 막는 데 쓴다.
⑥악수(幄手) : 손을 싸매는 것인데 붉은 비단으로 하고 속은 흰 솜으로 채우며, 길이는 한 자 두 치이며, 폭은 다섯 치로 한다.
⑦속옷 : 속적삼, 속바지
⑧겉옷 : 바지저고리, 버선, 대님, 요대(허리띠), 행전, 두루마기, 조대, 대대, 토수(吐手)
⑨신 : 검은 비단에 종이를 붙여서 만든 신
⑩천금(天衾) : 시신을 덮은 홑이불
⑪지금(地衾) : 시체 밑에 까는 겹이불
⑫기타 : 여자의 수의인 저고리와 적삼은 붉은색, 노란색, 녹색으로 하며, 단속곳, 속곳을 별도로 만든다.

 

 

이러한 준비가 끝나면 습전을 치우고 새로 주과포혜(酒果脯醯)를 차려 영좌에 올리고 소렴을 시작한다. 소렴상(小殮床)에 속포와 장포를 펴고, 그 위에 지금(地衾)을 편 다음, 여섯 사람이 양쪽에 나누어 서서 시신을 소렴상 위로 옮긴다. 수의를 입히기 쉽도록 미리 장포 위에 겉옷과 속옷을 끼워 깔아놓고, 하의 먼저 입힌 다음 상의를 입히는데, 남자 시신은 남자가, 여자시신은 여자가 하고 염은 남자가 한다.
옷깃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여미고, 고름은 감기만 하고 매듭짓지 않는다. 손은 악수로 싸매고, 귀는 충이로 막고, 멱목으로 눈을 가려 끈을 뒤로 돌려 매고, 머리를 두건, 복건, 망건으로 싸서 덮는다.


이렇게 한 후에 지금으로 시신을 싼 다음 길게 놓은 장포 양쪽 끝을 조금씩 찢어 위에서 아래로 잡아당겨 매고, 가로로 놓은 속포를 일곱 가닥으로 끊어서 각 가닥의 양쪽 끝을 각각 세 쪽으로 째서 발에서부터 차례로 양쪽 가닥을 잡아 힘껏 동여맨다. 이때 시신이 반듯하도록 양 다리 사이나 팔과 목, 어깨 사이 등에 헌옷이나 창호지 또는 황토를 싼 창호지 등을 끼워 넣는다.
이렇게 발에서 머리까지 일곱 가닥을 묶게 되는데 매듭은 한 가닥에 세 개이므로 모두 21개가 생기게 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광중(壙中)에서 체백(體魄)과 해체(骸體)가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소렴이 끝나면 이불을 덮어 시상에 모셔 놓고 상제들은 일어서서 애곡한다. 이때 여자 안상제들은 푼 머리를 걷어 매고, 남자 상제들은 베두건과 중단(中單 : 남자 상복 속에 소매 넓은 두루마기)을 입는다.
상주는 시신의 동쪽에서 서쪽을 향하고, 주부는 시신의 서쪽에서 동쪽을 향한 채 시신에 기대서 곡을 한다. 죽은 자가 부모일 때는 시신에 기댄 채 울고, 아들이거나 아내일 때는 옷을 잡고 곡을 한다. 며느리가 시부모에 대해서는 그 옷을 받들어 잡고, 시어머니가 며느리에 대해서는 시신의 가슴 언저리에 어루만지며, 형이 아우에 대해서는 그 옷을 잡고, 아내가 남편에 대해서는 그 옷을 잡아당기며 곡을 한다. 그러나 수(嫂)는 숙(叔)에게 손을 대지 않으며, 숙도 역시 수에게는 손을 대지 못한다. 이는 아무리 애통하고 슬프다 하더라도 아주머니와 아주버니 사이는 내외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자식이 부모의 시신에 기대어 우는 것은 부모를 더 볼 수 없기 때문이고, 손아랫사람이 손윗사람을 붙들고 우는 것은 집안 어른이 돌아가셨으니 우리는 누구를 의지하고 살 것이냐는 의미에서 붙드는 것이고, 손윗사람은 이제 자신이 이끌어 가겠다는 의미에서 옷자락을 잡아 주는 것이다.
침상을 거두고 본래 장소로 시상을 옮기면, 곡하던 자들은 곳을 그치고 제자리에 돌아와 어른은 앉고 어린 사람은 서 있는다.
축관이 손을 씻는 다음 새로 전을 차려 올리고 향을 피우면 상주는 곡만 하고 절을 하지 않으나, 다른 사람은 두 번 절을 한다. 이때부터 대렴 때까지 곡이 그치지 않아야 하는데, 상주가 계속 울 수 없으므로 노비나 삯꾼을 사서 소리 높여 슬프게 곡하게 한다. 이를 대곡(大哭)이라 한다.

 

 

5) 혼백(魂帛)과 명정(銘旌)
습과 염이 끝나면 마당에 모닥불을 피우는데, 추운 겨울날일 경우나 운명한 그날 습과 소렴을 못했을 경우에도 먼저 모닥불을 피울 수가 있다.
소렴이 끝나면 영좌(靈座)를 설치하고 혼백(魂帛)을 모신다. 혼백이란 신주(神主)를 만들기 전에 마포(麻布)나 백지로 접어서 만드는 임시적 신주이며, 보통 초상 중에만 쓴다. 그러나 신주를 만들지 않을 때는 이 혼백을 빈소에 만 2년을 모셨다가 탈상 후에 묘소 뒤에 묻는 것이 상례다. 혼백은 망인의 옷을 종이로 싸고 지방을 써서 함께 상자에 담아 가지고 교의에 놓기도 하고, 사진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혼백은 오색실로 만든 동심결을 끼워 혼백함에 넣어 모신다.


시신이 있는 남쪽에 횃대를 마련해 명정과 공포(功布)를 걸어놓는다. 공포는 상여의 길잡이로서 도로의 높고 낮음이나 갈림길에서의 방향 등을 알린다. 이 공포를 사상례(士喪禮)에서는 3∼5자의 길이로 만들어 대공포(大功布)로 한다. 명정(銘旌)과 공포를 걸어놓는 앞에 교의(交椅)를 놓아 그 위에 혼백을 모셔놓고, 그 앞에 탁자를 놓아 삼색 과일을 놓고 술잔을 잔대에 받쳐놓는다. 삼색 과일이란 붉은색 대추, 흰색 밤, 검은색 곶감 세 종류를 말한다.
탁자 앞의 향합(香盒)은 동쪽에 놓는다. 날이 어두워지면 탁자에 촛불을 켜고, 아침 저녁으로 빗, 수건, 세수할 물을 받들어 영좌 앞에 놓는다. 망인이 살아 계실 때와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으라는 뜻이다.
명정(銘旌)은 붉은 비단에 백분(白粉)과 아교를 섞어서 쓴, 고인의 명찰이라고도 할 수 있다.

 

 

6) 대렴(大殮)
대렴은 소렴이 끝난 뒤 시신을 대렴포(大殮布)로 싸고 묶어서 입관하는 의식으로서, 소렴을 한 다음날, 즉 고인이 사망한 지 3일째 되는 날 새벽 동이 틀 때 하는 의식이다.
날이 밝으면 집사는 대렴상(大殮床)을 가져다가 방 동쪽 벽 옆에 놓는다. 거기에 횡포 두 폭을 펴고, 그 위에 장포를 펴놓은 다음 대렴금을 펴놓는다.
시신을 들어 대렴금 위에 옮겨놓은 후, 대렴금으로 먼저 발을 싸고, 다음에 머리와 왼쪽, 오른쪽 순으로 여민다. 장포 위쪽 아래쪽을 각각 세 가닥으로 째서, 위 아래 한 가닥씩 묶어 세 매듭을 짓는다.


횡포는 각 양끝을 세 가닥씩 쪼개서 소렴 때와 같이 한 가닥은 버리고 다섯 가닥으로 묶어서 다섯 매듭을 짓는다. 이때 횡포로 쓰는 베는 올이 가는 것으로 쓴다.
시중꾼이 관을 들여와 대렴상 서쪽에 갖다 놓으면, 집사는 관 바닥에 칠성판을 깔고 그 위에 지금(地衾)을 깐다. 시신을 기울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들어서 관 속에 넣는다. 이때 습할 적에 빠진 머리, 손톱, 생시에 빠진 이 등을 넣은 다섯 개의 주머니를 관 귀퉁이에 넣고, 관 속에 빈 곳이 있으면 망인의 입던 옷을 말아서 채운다. 그 다음 천금(天衾)으로 시신을 덮고 관의 뚜껑인 천개(天蓋)를 덮는다. 이때부터 상주와 가족들은 슬픔을 다해서 곡을 한다.


천개를 덮고 나무 못질을 해 입관이 끝나면, 대렴상을 치우고 관을 싸는데, 관은 기름 먹인 종이로 싸고, 백지를 왼쪽으로 꼬아 만든 노끈이나 백지로 감은 새끼 한 가닥으로 묶는다.
이를 절관(節棺)이라 하고, 절관에 쓰는 노끈을 절관끈이라 한다. 옻칠한 관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경우, 관에 옻칠을 하려면 입관한 뒤에 칠하는 것이 좋다. 옻칠한 뒤 끈으로 매는 것은 다음과 같이 하며 시신의 위 아래를 표시해서 장사지낼 때 당황하는 일이 없도록 한다.
이렇게 대렴이 끝나면 명정으로 널을 덮어 방의 북쪽에 모시고, 병풍을 치고 휘장을 두른다. 교의에 사진이나 혼백을 모셔놓고 앞에 제상을 놓는다. 그 위에 향상(香床), 향로, 향합, 모사기(茅沙器), 촛대 한 쌍, 띠, 수건 등 망인이 생전에 사용하던 유품을 놓아둔다. 그리고 전을 올리는데, 그 방법은 소렴 때와 같다.


전을 올리고 상주는 상차(喪次)로 간다. 상차란 중문(中門) 밖 사랑채나 행랑채의 허름한 방에서 상주가 탈상(脫喪)할 때까지 기거하는 곳을 말한다. 상차에는 거적자리를 깔고, 흙덩어리를 싸서 베개로 하며, 이불을 치우고, 누울 때도 수질(首질)과 요질(腰질)을 풀지 않는다. 주부와 여자들은 중문 안의 큰 방이 아닌 별실(別室)에 상차를 준비하고, 주부와 상주는 서로의 상차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상주가 방에 상차를 차리지 않고 빈소 앞 마당이나 북쪽 담 밑에 막을 치고 있기도 하는데, 그 막(幕)을 의려(倚閭)라 한다
대렴이 끝나면 대곡을 그친다. 상주와 가족은 조석으로 상식을 올리며 곡을 하고, 상주는 조객이 찾아왔을 때도 곡을 한다.

 

실로암의 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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