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 부검장 ... 견학
2008. 1. 10.
*[부검장 견학]*

[前略] .....
2004.01.07(月) 14:00 / 경대병원 해부실에서 한 사나이를 만난다. 180cm의 노루사냥꾼, 독신자, 남.52세, 변사발견 10여일째 ... / 국과수 직원의 冒頭설명이 끝나고 그 살아있(었)던 자의 배가 갈라진다. / 겨울이라 형체변형은 크게 없었지만 악취가 온 방을 진동하고 있었다. / 마치 도살장에서 돼지고기를 썰듯이 스스럼없이 메스질과 카메라질이 계속된다. / "이게 허파, 이건 췌장, 이게 심장이고, 콩팥은 이렇게 생겼지요 ....". 젊은 李상한 교수가 돼지고기를 능숙하게 썰고 있다. / 악취가 더욱 심해지고, 동료 두 명이 결국 빠져나가고 만다. / 이어서 두피가 벗겨지고, 전기톱에 의해 사나이의 두개골이 잘라진다. 벗겨놓은 두껑은 바가지와 흡사하다. / 그 속에서 자그마한 뇌가 나타난다. / "이게 자그마치 6kg에요 ..." 무심하니 묵주 굴리고 있는 옆의 자매님 한 분을 쳐다본다. /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다. / 李가 골을 썰더니 "뇌출혈 흔적 없음 .." 바케스에 담아 둔 내장과 함께 뱃속에 집어넣는다. / 시체는 이미 걸레조각이 되었다. / 한 켠에서 조수가 살아있는(?) 껍데기들을 깁고 있다. 李가 생선회 포 뜨듯 예리한 메스로 능숙하게 옆칼질을 한다. / 두개골 바느질까지 끝나고, 손을 씻으며 착하게 생긴 李박사가 멋쩍게 웃는다. / "Wife도 직업 바꾸라고 했지만 이건 숙명이예요 ..." 첫 강의때의 그의 말이 상기되더구나. / 지난 해 이맘때쯤, 지하철에 즐비하던 그 사체들의 잔영과 함께 ... 그렇게 한 사나이가 두 번, 세 번 ... 한없이 죽어가고 있었다.
모처럼의 한파가 법의학부 해부실 주변을 을씨년스럽게 감싸고 있다.
직업상 다양한 행태의 시체를 무수히 보아 왔기 때문에 단순히 호기심만으로만 해부실로 들어섰다.
그런데 그게 아니잖아. 우선 악취부터가 신비롭도록 특이하다. 여느 시체답잖이 불쾌하였기 때문이다. 소사자는 그런대로 구수하기도 하고, 事故死는 제법 신선하기까지 한데 ...
마치 살아있는 듯 편히 누워있는 한 사나이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엄숙하여야 한다는 분위기답잖게 처음 들어와 본 부검장의 분위기가 그렇질 못해 실망을 한다.
망자 생전의 지위 때문은 아닐까(?). 유족도 보이질 않고 ... 당연하니 추측했던 슬픈 흐느낌조차도 없다. 그러나 견학의 참 의미를 위해서라도 이 죽음의 현장을 애도하리라 다짐한다.
그래, 이따위 인간적인 슬픔과 악취는 충분히 참을 수가 있어.
간단하게 배가 갈라질 때 첫 충격이 몰아쳐 왔다. 솥에서 금방 삶은 개(犬) 꺼내 썰던 기억과 흡사하다. 인간의 존엄성 따위를 제외하면 개 돼지, 뭇 미물과 무에 다를까(?). 허망함이 함께 밀려 왔었다. 갈라진 배 속에서 또 다른 악취와 함께 내장의 주요구조부가 꺼내지고, 간단한 설명과 함께 양철바케스에 담겨진다. 마치 한 근 두 근 흥정되는 고깃덩어리처럼. 역시 이 사나이의 존엄성은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이어서 신체 요모조모에 메스가 가해지고, 끝으로 두개골이 갈라지며 ... 요식적인 과정 거친 후 그렇게 닫히는 것으로 작업(?)이 끝났다.
이제부터 우리가, 내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이 시체를 정성스럽게 보듬어 흙으로 돌려보낼 준비를 해야 한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할까? 숙제이다. 살아남은 자의 영원한 과제이다.
죽음 그 자체는 기실 아무 것도 아니다. 단지 영혼이 있다는 전제때문에 우리가 배운 바 그 모든 학문이 성립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부검실, 李상한 교수님의 생각은 어떨까(?) 뭇 호모.사피엔스를 법의학적으로 해부하며 과연 어떤 특이한 느낌을 추가할까(?) - 진짜 궁금하다.
두개골이 스스럼없이 잘라질 때, 옆의 묵주 굴리던 자매님의 생각과 별로 다르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 진짜, 억수로 궁금하다.
인격과 존엄성이 배제된 사체처리과정을 보며 얻은 어설픈 나의 결론은 "사건수사를 위한 해부, 즉 두 번 죽이기"는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엄청난 이해관계가 얽힌 사건이 아니라면 말이다.
용꿈이든 개꿈이든 꿈은 꿈에 그쳤으면 좋겠다.
지난 해 이맘때쯤.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참극의 현장에 동참한 적이 있었다.
200302180955 - 중앙로역, 선착대로 제1출구로 진입할 때 만났던 그 아수라장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한 치 앞을 가름할 수 없는 그 암흑속에서 우리의 서치라이트 불빛을 보고 단발마 지르며 올라오던 그 생명체들을.
엎치락 뒷치락 .... 얼마나 긴 日月이 흘렀을까. 10분, 고작 20분?, 지하1층, 2층, 3층 ... 단발마 지를 겨를도 없이 쌓이고 쌓인 인체더미들이 내 눈 앞에 펼쳐졌을 때, (오, 주님!) 삶과 죽음의 세계가 공존중임을 느꼈었지. 너무 황당해서였을까! 순간적으로 그지없이 편안하고,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래, 이 공기호흡기만 없다면 나 이들과 무에 다르단 말인가(?).
최성기가 끝나고 재진입했을 때의 참상은 더욱 그러하여, 이미 생명존중의 느낌은 내 思考 어느 구석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지. "이럴 수도 있는거야, 삶과 죽음은 역시 한 시간대에, 한 공간대에 공존하고 있었던거란 이야기지 ..." 역시 선각자들이 느끼고, 깨우쳐 준 理論들이 옳았어! 단순히 그 죽음의 과정이 다소 차이가 날 뿐이지.
이미 일말의 뼛가루로 화해버린 지하3층 객차안에서 나, 제대로 울지도 못하고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기억 ....
(그렇게 장례관리사 과정이 내 옆으로 다가온 걸꺼야)
李상한 교수님의 자상한 해부결과 브리핑 - "너무 오래 된 사체라서 뚜렷하니 밝혀낸 게 없다" - 을 들으며 받은 느낌은 의외로 컸었다. 일종의 쇼크라고 해고 과언이 아닐 정도의 ...
그건 장례지도사로써 사체=끔찍함에 대한 경험 정도에 그칠 그 무엇 이상이었다.
변사사건을 일반정황으로도 처리가능하다면 수사자의 주관을 법제화, 보장해 주었으면 하는 막연한 기대감. "사체를 살아 있는 생명체로 인식하기"가 그것이다.
즉, 중세적 죽음의 공포에서, 축복의 죽음을 지향하고 있는 작금의 흐름에 따라가자는 말이다.
비록 부검 뿐이 아니더라도 新約의 파스카가 바로 우리 산 자들의 생활모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의 거침없는 ... 만남의 ... 장소.
李상한 교수님의 하시는 사업(?)에 神의 손길이 함께 하시길 빌며 ....
[숙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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