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 10.
[출처] 생활성서사
* 연옥(煉獄) *
[purgatory / purgatorium]

1. 연옥과 연옥영혼
가톨릭에 있어서의 연옥은 일반적으로 세상에서 죄를 풀지 못하고 죽은 사람이 천국으로 들어가기 전에, 불에 의해서 죄를 정화 한다고하는, 천국과 지옥과의 사이에 있는 상태 또는 장소를 말합니다. 대죄를 지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지만, 대죄를 모르고서 지은 자 또는 소죄를 지은 의인의 영혼은 그 죄를 정화함으로써 천국에 도달하게 됩니다. 바로 이‘일시적인 정화’를 필요로 하는 상태 및 체류지가 ‘연옥’입니다.
가톨릭의 연옥론은 하느님의 성성, 정의, 예지, 자비를 명백히 보여주며, 인간을 절망과 윤리적인 경솔함으로부터 지켜주고, 더구나 죽은 사람도 도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증하여 줌으로써 많은 위로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대 및 중세의 카타리파, 발두스파 등 이단자들은, 죽은 자를 위한 전구와 연옥의 존재를 부정하였고, 루터는 ≪연옥론철회(Widerruf vom Fegefeuer,1530)에서 연옥신앙을 부정 하였습니다.
로마 교회가 연옥에 관한 가르침을 정식으로 정의내린 것은, 리용 및 피렌체의 합동공의회 (1274년 및 1439년), 그레고리오 13세 및 우르바노 8세의 신경, 그리고 프로테스탄트에 반대하여 열린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년)에서 였습니다. 연옥의 영혼은, 이 세상에서의 경우 은총의 도움에 의해서 행진하여진 애덕에 따른 통회와 기도에 의하여 소죄가 정화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연옥에 있어서도 소죄가 정화됩니다. 하지만 죄에대한 슬퍼함이 벌에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즉 여기서는 적극적으로 착한 일을 하거나 공덕을 쌓는 상태가 아니라,
단지 하느님의 정의에 의해서 내려진 벌의 고통을 견디는 것만으로 정화와 속죄가 되는 상태입니다.
내세에서는 공덕을 쌓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연옥의 영혼은, 신이 내리는 고통을 즐겁게 수용함으로써 죄에 대한 유한적인 벌의 보상을 하면 확실하게 정화되는 것입니다.
연옥의 고통이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것이 아니고, 각자의 죄에 상응하는 것임은 물론입니다. 그 고통의 기간이나 엄중함도, 지상의 신자의 기도 와 선업 즉 신자의 전구에 의해서 단축 또는 경감됩니다. 그 다음 연옥의 영혼은, 신을 마음으로부터 사랑하고, 천국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확실하므로, 고통이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흔들리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연옥의 영혼은 지상의 사람들을 위하여 전구할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지상의 신자에게 연옥의 영혼의 전구를 기도하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연옥의 영혼에대하여 성 토마스는, 연옥의 영혼이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지는 못하며, 또한 지상의 일에 관하여 지식을 갖지 못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하지만, 벨라르미노(Robertus Bellarminus, 1542∼1621), 수아레스(Francisco de Suarez, 1548∼1617), 구트베를레트(Konstantin Gutberlet, 1837∼1928), 셰벤(M. J. Scheeben, 1835∼1888), 바 우츠(Bautz), 두르스트(B. Durst)등 신학자는, 연옥의 영혼이 그 형벌 상태 아래 있다는 이유 때문에 자신에게는 공덕이 없지만, 우리를 위해 기도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공심판뒤에 연옥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지만, 하나 하나의 영혼에 있어서는 그 벌로부터 해방되기 까지 이어질 것으로 봅니다. 정화가 끝나면 영혼은 곧 천국으로 들어갑니다.
2. 작은 교회 사전
*연옥이란 (?)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연옥은 하느님을 직접적으로 볼 수 있기 전에 아직 정화를 필요로 하고 있는 선택된 사람들 (즉 성화은총 또는 하느님과의 우정 안에서 죽은 사람들)의 상태나 조건. 이 정화과정은 단죄의 형벌과는 전혀 다르다. 가톨릭 교회는 신자들이 평상시에는 물론 특히 "위령의 날" 축일(11월 2일)에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권장하고 있다(교리서 1030-1032).
연옥과 성인들의 통공(通共)(교리서 1030-1032, 954-959)
만일 당신이 하느님 사랑 안에서 죽었지만 "죄의 얼룩들"을 지니고 있다면, 이런 얼룩들은 "연옥(煉獄)"이라고 불리는 정화과정 안에 있게 된다. 이 죄의 얼룩들은 주로 이미 용서는 받았으나 당신의 생애 동안 충분한 속죄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죄(輕罪)나 사죄(死罪)에 아직도 남아 있는 잠벌(暫罰)이다. 성서를 반영하고 있고 전승 안에서 발전된 연옥에 관한 교리는 제2차 리용 공의회(기원후 1274)에서 명시적으로 표현되었다.
(교리서 1030-1032).
연옥을 통과하게 되면서 당신은 전혀 이기심이 없고 완전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어 있을 것이다. 당신의 이기적인 자아, 즉 끊임없이 자기 만족만을 추구했던 당신의 부분은 영원히 죽어 있을 것이다.
"새로운 당신"이 당신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의 강렬함에 의해서 변형되고 순화된 당신의 동일한 내적 자아가 되어 있을 것이다.
연옥의 사실을 선포하는 것 외에도, 제2차 리용 공의회는 또한 "지상의 신자들이 연옥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미사의 희생제사, 기도, 희생, 그리고 다른 종교적 업적들을 그들을 위해 봉헌함으로써 커다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교리서 958, 1032, 1055).
이 교리에 함축되어 있는 것은, 지상의 하느님 백성과 우리보다 앞서 간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일치의 유대이다. 이것을 "성인들의 통공"(communio sanctorum)이라고 부른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 일치의 유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천상 영광중에 있거나 혹은 죽은 후에 단련받고 있는 형제들과의 생명적 교류에 관한 선조들의 존귀한 신앙을 이 거룩한 공의회는 충실하게 받아들인다."
(교회헌장」 51항; 교리서 828)
성인들의 통공은 쌍방통행로이다.
위에 인용한 구절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지상에 있는 당신이 연옥의 단련을 겪고 있는자들을 도울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천국에 있는 사람들도 하느님께 전구(轉求)함으로써 나그네 여정 중에 있는 당신을 도와줄 수 있다(교리서 946-959).
3. 추천도서
* 연옥 [가톨릭출판사]
연옥에 관한 가르침을 신자들에게 깨우쳐 주며, 연옥 영혼들을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교회사 속에 등장하였던 위대한 성인들이 활동이 간략하게 소개되고 있는데, 이들은 감동적인 속죄의 보속 행위를 통해 자신들이 "불쌍한 영혼들의 각별한 벗이자 조력자"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연옥의 정화소로부터 연옥 영혼들의 환영과 체험들이 우리에게 분명한 모습으로 전달되는 것은 매우 감명적인 것입니다.
불쌍한 영혼들은 천사들이나 성인들의 벗일뿐 아니라 우리의 가장 친밀한 벗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우리가 그들을 돕지 않는다면 우리는 스스로 막대한 손실을 당하는 것입니다.
* 연옥실화 [가톨릭출판사]
연옥의 존재와 버림받은 영혼들의 고통을 여러 실화들을 통해 생생히 보여주고 있으며 연옥영혼을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위안과 희망의 원천인 내세의 존재를 확실하게 하는 몇 가지 일화를 소개한 후 연옥의 존재, 연옥에서의 감각과 고통과 벌, 연옥에 들어가는 사람, 장소, 시간, 고통의 등급 등 흥미로운 문제들을 각양의 신비로운 체험으로 엮어가고 있습니다.
아울러 교회의 가르침과 성인의 권고에 따른 연옥영혼에 대한 신심과 이 신심의 특성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또한 연옥 영혼을 위로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그 구체적인 방법은 어떤 것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연옥영혼을 위로하는 각가지 회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연옥에 대한 참된 신심은 하느님의 자비와 엄위로움을 더욱 깊이 체험할 뿐 아니라 현세의 삶과 인생의 목적을 성찰하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연옥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다양한 실화로 쉽게 가르쳐주고 있으며 연옥영혼들을 위한 기도의 필요성을 깨우쳐 줍니다.
저자 : 막스 퓌상/ 역자 : 한국순교복자수녀원/ 4.6판 가톨릭출판사
[목차]
서론- 내세는 있나 없나
1. 연옥의 존재
2. 연옥에서의 감각의 고통과 벌
3. 실각(失脚)의 고통과 벌
4. 버림받음의 고통과 벌
5. 연옥에 대한 흥미 있는 네 가지 문제 - 들어가는 사람, 장소, 시간, 고통의 등급
6. 연옥 영혼의 기쁨
7. 연옥 영혼에 대한 신심
8. 연옥 영혼을 위로하는 이유
9. 연옥 영혼을 위로하는 방법
Descent of Christ to Limbo - ANDREA DA FIRENZE
1365-68 Fresco.Cappella Spagnuolo, Santa Maria Novella, Florence
[image 림보=생략]
+++++++++++++++++++++++++++++++++++++++++++++++++++++++++++++++++++++++

*연옥에 대해 생각한다*
[펌]주호식신부의 "가톨릭자료실"에서
우수수 낙엽이 떨어져 뒹구는 계절이다. 스산한 바람결에 휘날리는 낙엽 하나하나에 진리가 담겨있다. 어제의 그 파랗던 낙엽이 아니었던가. 인간도 시들어지는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죽음을 비켜갈 사람은 아무도 없다. 태고 이래로 죽음을 이겨보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동물은 죽음을 숙명으로 받아들이지만 인간은 극복해 보려고 노력한다. 11월은 죽음을 특별히 생각해 보고, 연옥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위령성월이다.
누구에게나 다가올 죽음인데도 나에게는 비켜갈 것만 같은 죽음! 그것은 인생의 수수께끼 가운데 절정이다. 과연 죽음은 내게 언제 들이닥칠 것인가? 아무도 모른다. 하느님만이 아신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절치 통곡하게 된다. 울고 또 울고 슬픔은 눈물이 되어 흐르고 또 흐른다.
과연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저 슬프고 두려움만 주는 것인가? 아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관문이다. "교우 여러분, 죽은 사람들에 관해서 여러분이 알아두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슬퍼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믿다가 죽은 사람들을 하느님께서 예수와 함께 생명의 나라로 데려가실 것을 믿습니다"(1데살 4,13-14).
어떤 종교에서는 인간이 죽으면 다시 환생한다고 믿는다.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는지에 따라, 더 좋게 태어나거나 더 나쁘게 태어난다고 믿는다. 때로는 버러지로 태어나기도 하고 돼지로 태어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환생도 전생도 믿지 않는다. 우리는 영생을 믿는다. 영생은 하느님 나라에서 누리게 된다. 또한 개신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천국에 가느냐, 지옥에 가느냐로 결판난다고 믿는다. 천국에 갈 사람은 여기저기 거치지 않고 직접 가는 것이고 지옥에 갈 사람도 직접 가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연옥이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사람이 죽으면 천국으로 가기 전 정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물론 죄도, 그 벌도 없는 완전히 정화된 사람은 천국으로 직행할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어찌 완전히 정화된 상태로 죽을 수 있는가 말이다. 그러므로 정화가 필요한 사람은 죽어서라도 정화를 거쳐야 하며 이를 "연옥"이라고 부른다. 일단 연옥에 가면 언젠가는 하늘나라로 갈 수 있기에 지극히 희망적이다. 물론 여기서 연옥을 어떤 장소의 개념으로 알아들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의 인식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장소의 개념으로 알아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연 옥
연옥에 대한 신앙교리는 피렌체 공의회와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확정되었다. 교회가 연옥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성서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을 순수하게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결국 없어지고 말 황금도 불로 단련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황금보다 훨씬 더 귀한 여러분의 믿음은 많은 단련을 받아 순수한 것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는 날에 칭찬과 영광과 영예를 받을 것입니다"(1베드 1,7). "만일 그 집이 불에 타버리면 그는 낭패를 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신은 불속에서 살아나오는 사람같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1고린 3,15). 연옥은 불로써 표현된다. 불이란 정화시키는 것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옥의 불을 면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옛 기도문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다.
구약성서에서도 연옥에 관계된 구절을 발견할 수 있다. 유다 마카베오가 죽은 이들이 그들의 죄에서 풀려나도록 그들을 위해서 그 속죄의 제물을 드리게 하였다(2마카 12,45 참조).
성서뿐 아니라 성인들도 연옥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하고 있다. 대 그레고리오 성인은 그의 대화집에서 "어떤 죄들은 현세에서 용서받을 수 있으나, 어떤 죄들은 내세에서 용서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연옥에서 죄의 잔재를 용서받을 수 있음을 증언하는 것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주저하지 말고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들을 위해 기도드리자."고 호소했다.
우리 교회는 초대교회 때부터 죽은 이들을 존중하고 기념했으며 그들을 위해 기도와 미사 성제를 드려왔다. 이러한 전통은 지금껏 계속되고 있다. 또한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뿐 아니라 자선과 대사와 보속도 권고하고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요즘 우리에게 문제가 생겨나고 있다. 예를 들면 연옥 영혼들에게 대사를 받도록 기도하는 것이 무력화되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분명히 말한다. "정화 중에 있는 죽은 신자들도 성인들과 통공을 이루는 같은 지체들이므로 우리는 그들을 위한 다른 도움과 더불어 특히 그들의 죄로 인한 잠벌을 면하게 하는 대사로서 그들을 도울 수 있다." 바오로 6세의 교황령에 따르면 "대사는 죄로 인해 받게 될 일시적인 벌을 부분적으로 면제하느냐 전적으로 면제하느냐에 따라 부분대사와 전대사로 구분된다." 즉 잠벌을 어느 정도 면하게 할 수 있는 한대사를 받을 수도 있고 완전하게 잠벌을 면하게 할 수 있는 전대사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보다 먼저 간 영혼들에게 전대사를 받을 수 있게 함으로써 그 뜨거운 연옥의 형벌을 면하게 할 수 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귀한 선물일 것이다.
묘지를 근사하게 단장하고 번들번들한 비석을 세워주는 것이 달가운 게 아니다. 죽은 이에게 대사를 얻게 하는 것이야말로 너무나 귀중한 선물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1997년도에 나온 새 가톨릭 기도서에는 "대사를 얻는 기도문"이 빠져있다. 이는 연옥 영혼에게 너무도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왜 빠졌을까? 연옥 영혼들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 아닐까?우리 나라에서는 성교 공과라는 두꺼운 기도서가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1968년 가톨릭 기도서가 발행되었는데 새 시대에 맞는 문체로 만든 것이다. 그러던 중 1987년 수정판이 나왔다. 거기까지는 대사를 얻는 기도가 있었다. 새로 나온 기도서가 문제를 가지고 있다면 하루빨리 수정하여 대사를 얻는 기도를 통해서 많은 이들이 연옥 영혼에게 대사를 기부함으로써 그들이 천국에 빨리 들어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대사를 얻는 기도문은 간단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교황님의 뜻대로 주모경(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을 하면 된다. 물론 은총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서 미사에 참석한 다음에 외우는 기도다. 문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나 대사를 얻는 기도문이 기도서에 있는 것과 없는 것과는 너무도 다르다. 물론 우리 교회가 가르치는 대로 연옥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들을 대신하여 자선을 하고 보속도 함으로써 그들을 도울 수 있다.
위령기도(연도)는 많은 신자들이 즐겨하는 연옥 영혼들을 위한 기도다. 또한 우리의 전통에는 그들을 위하여 자주 위령미사(연미사)도 봉헌한다.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한번도 위령기도를 바치지 않거나 위령미사를 드리지 않는 사람은 믿음이 부족한 사람이다. 모든 성인의 통공을 모르는 사람이다.
위령성월에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동시에 우리 자신의 죽음을 가슴에 새기면서 주님 곁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는 성스러운 달이 되었으면 좋겠다.
<최기산 보니파시오 / 인천교구 신부, 인천 가톨릭 대학교 겨레문화연구소장, 경향잡지, 1999년 11월호 / CBCK 홈페이지에서>
'○ 다시래기(葬)' 카테고리의 다른 글
*喪.葬禮의 歷史(2) - 고려, 조선시대 (0) | 2022.07.27 |
---|---|
*喪.葬禮의 歷史(1) - 선사, 낙랑, 삼국시대 (0) | 2022.07.27 |
*[Report]축제를 마치며 ... '위선의 辯' (0) | 2022.07.27 |
*[Report] 부검장 ... 견학 (0) | 2022.07.27 |
*[風水] - 풍수일반 (0) | 2022.07.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