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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래기(葬)

*[風水] - 풍수일반

by fireball'Flee 2022. 7. 27.

2008. 1. 10.

[조각 모음]

 

 

*풍수(風水)*

 

[펌] http://www.funeraln.com/main/information/e1.html

 

 

1. 풍수설(風水說)의 유래
사실 풍수 사상이 하루아침에 이룩된 것은 아니다. 아마 중국 황하 유역에서 바람과 물을 가려 삶에 알맞은 곳을 택한 것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확고한 관념으로 발전되고 점차 현실적인 면에서 정신적인 문제로 원시신앙이나 음양사상 같은 것이 바로 오늘날의 풍수사상으로 발전하여 진 것같으나 정확함은 알 수 없고 다만 우리 나라 유적가운데 반월성(半月城) 만월성(滿月城) 같은 이름은 모두 풍수 사상에서 붙여진 것이라 믿어진다.
삼국유사의 신라 석탈해왕에 관한 기록을 보면 왕이 평민의 동자로 있을 때 이른바 초생달 모양으로 생긴 곳에 집을 지어 살았다. 그후 신라2대 남해왕이 그 인물이 출중한 것을 알고 나라의 장래를 맡기기로 생각하여 그의 맏공주와 결혼을 시켰다. 그는 얼마 뒤 석탈해라는 이름을 얻고 신라 제4대왕이 되었다고 한다. 이는 곧 살기 좋은 곳 다시 말하여 명당에 살았기 때문에 복을 받아 왕까지 되었다고 신라인들 사이에 오고 가는 말이 이었다 한다 그것은 아마 그 당시 풍수사상에서 비롯된 것 같다고 여겨진다. 이로 미루어 보아 풍수사상은 삼국시대로부터라고 생각되며 체계화된 것은 통일신라시대의 서기676년부터 고려 건국초인 서기 918년경이 아닌가 여겨진다.

사기요람(史記要覽) 제왕편을 보면 태고에 복희씨가 팔방을 정 하였으며, 그후 서기전 약 3000년경에 헌원씨가 지남거(指南車)를 만들어 방위를 분별하였다고 하니 이것이 지남철의 시초인 것 같다. 서기전 1122년 중국 문왕이 지남철을 사용하였다고 하나 만든 사람은 밝혀져 있지 않다. 협기음양서를 보면 서기 1683년 청나라 강희 22년 인황제(仁皇帝)가 역대 음양법을 종합수집하고 지남거를 성윤도철로 제작하였다고 한다. 아마 우리나라에는 중국으로부터 들어와서 삼국시대초에 사용되었다고 여겨진다.

우리 인간 생활에는 이와 같이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 생물과 자연관계를 다루는 학문이 곧 풍수지리라 할 수 있다.

 

 

2. 음양과 오행
우주를 곧 천지라 하며 천지가 곧 음양인 것이다. 천지가 순환 하메 춘·하·추·동의 네 계절이 생기고, 그 네 계절이 생기매 24절기가 생기고, 이에 동서남북의 4방위가 생하고, 4방위 사이에 각각 간 방을 붙이니 8방이 된다. 이 8방을 절기에 맞추어 24방위로 나눈다.(8방을 중심으로 좌우로 세분하여 한 방위를 3으로 나누니, 24방위가 된다)

4계절을 1년으로, 1년을 12개월로, 1개월을 30일로, 이는 우주의 순환과 달의 운수에 따라 정한 것이다.

수·화·금·목·토 오행이 생기고 60갑자를 만들어 일월의 운회(運會)를 알고 24방위를 가늠하는 법칙을 제정할 수 있게 되었다.

천지를 정음(正陰) 정양(正陽)으로 구분하고, 24방위에는 천간과 지지를 붙이고 오행을 배치하여 춘?하추?동과 24절기를 포함하여 하나의 원리를 만들어낸 것이니, 24방위를 임자(壬子) 계축(癸丑) 간인(艮寅) 갑묘(甲卯) 을진(乙辰) 손사(巽巳) 병오(丙午) 정미(丁未) 곤신(坤申) 경유(庚酉) 신술 (辛戌) 건해(乾亥)로 정하고 임자계인갑을진오곤신술건(任子癸寅甲乙辰午坤申戌乾) 12방은 양방(陽方)으로 태양이 가장 많이 쪼이는 방위로 하며 축 간묘손사병정미경유신해(丑艮卯巽巳丙丁未庚酉辛亥)는 음의편으로 그늘이 가장 많이 지는 12음방으로 정하였다.

하락(河洛)의 수를 오행에 배정하여 북의 1 ?6수와, 동의3·8목과, 남 2·화와, 서의 4·9금과, 중앙의5·10토로 나누고 이중에서 1,3,5,7,9수를 양의 수로 2,4,6,8,10의 수를 음의 수로 책정하여 팔괘(八卦)의 기본수를 만들었다. 여기서 수목화금토의 음양오행의 상생상극의 원리가 도출되었다. 왜 북을 자(子)라고 하였으며 수라고 하였는가 지구는 자체가 자석이므로 북은 지구의 축(軸)이 되며 자는 비로소 양이 시작되는 점(시간으로 0시)에 해당하는 동지9冬至)의 방위이다 또 수(水)란 천지가시작될 때 제일 먼저 물이 생겼다고(천일생수,天一生水)하여 만물은 물로써 생하는 이치를 적용하였기 때문에 북을 자(子)라고 하고 수의 위치로 정하였던 것이다.

동을 목이라 한 것은 지구의 자전으로 태양이 동쪽에서 뜨게 되었기 때문에 제일먼저 햇빛의 따뜻한 기운을 받기 시작하여 수목의 생장이 촉진되므로 그 이치에 따라 수생목이라 목을 동에 배정한 것이다. 남을 화의 위치로 한 것은 한 여름 화기를 받아 수목이 무성하게 되므로 이 이치에 쫓아 목생화로서 화를 남방에 속하게 한 것이다. 서를 금이라 함은 결실된 오곡백과가 누렇게 익어 온 천하가 황금빛을 갖게하는 고로 토생금으로 서에 금을 속하게 한 것이다. 만물은 토에서 생성함으로 동서남북 아무 곳에나, 무처불입(無處不入) 하는 고로, 낙엽이 떨어져 뿌리에 영양을 주고 과실이 떨어져 흙에서 싹이 나는 이치에서 토를 중앙에 속하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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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명 당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데는 살기 좋은 명당을 구하여야만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명당도 그 목적에 따라 각각 다르다. 다시 말하자면 수도를 정하고자 하는 사람은 수도적 지리여건이 알맞은 곳을 택할 것이요 공장을 짓고자 하는 사람은 공업적 지리여건이 알맞은 곳을 택할 것이며, 농사를 짓고자 하는 사람은 농업적 지리여건이 알맞은 곳을 택할 것이고, 나무를 심고자 하는 사람은 식수적 지리여건이 알맞은 곳을 택할 것이요, 집을 짓고자 하는 사람은 생활적 지리여건이 알맞은 곳을 택할 것이니, 이는 예나 지금이나 풍수지리를 알고 생활하여온 산 증거이다.

우리 인간은 자연 속에 살다 죽어 가는 것이 자연의 원리이다. 살아서도 자연 속에, 죽어서도 자연 속에, 우리 인간은 자연을 떠나서는 살수 없다. 살아서 사는 곳은 그 주위의 형세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수 있 거니와, 죽어서 묻힌 그곳은 영원한 하나의 잠자리로 주위환경 생긴 대로 사상보국형세 따라 길하면 길한 대로 흉하면 흉한 대로 백골이 변하여 가니 식물에 비유하면 꽃과 같다.

음택지는 양택지와 달리 천리행룡(千里行龍) 일석지(一席地)로 한 송이 꽃이 되며 그 꽃의 밑씨가 곧 혈의 핵심이 될 것이다. 그 혈에 백골이 삽입되어야 그 정기가 후손에게 결과를 부여한다. 혈에 조상의 백골을 모셨다 함은 꽃이 열매를 맺는 단계와 같다. 그 혈의 정기의 농도는 일정 하지 않다. 그 혈의 범위에서 그 혈이 맺어 질 수 있는 주봉 및 래룡과 주위의 형태에서 발생한 정기 등으로 후손들의 인격적인 등차가 생긴다.

 

(1) 관산론(산 살피기)

1) 살피는 요점

가) 길산과 흉산을 살펴 왕한 기운과 쇠잔한 기운을 구별하고
나) 길한 물과 흉한 물을 살펴 맑음과 흐림을 구별하고
다) 보국의 범위와 안정됨을 살펴 왕기와 쇠기를 구별하고
라) 흉토와 길토를 보아 강하냐 무르냐를 살피고
마) 돌과 바위의 길하고 흉한 것까지를 보아야 한다.
바) 주산의 위엄과, 래용의 변화 및 기세와, 룡호의 자세와. 안산의 응기와, 주위의 정밀을 보아 혈의 진가(眞假)를 판단하나 또 혈판이 이에 대비되어야 한다.

2) 길산

명산(明山)이라 하는 것은 산수풍이 서로 상생 상합하여 모두 길하게 보이는 것을 명산이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길산이라 함은 보산보국(保山保局)이 잘되고, 모두 급기(急氣)를 벗고, 위엄(威嚴)도 있고, 서기(瑞氣)도 나며, 산과 물과 바람이 서로 엉겨 안정한 자세를 이루면 바람도 이에 따라 길풍이 되고, 물도 이에 따라 길수가 되며, 초목도 이에따라 윤택하고, 사람도 이에 따라 흥하게 된다. 이것이 곧 지기(地氣)가 상승(上昇)하고 천기(天氣)가 하림(下臨)하는 자연원리 이며 이를 곧 자연이라 하는 것이다.
산이 양명(陽明)하고 순응(順應)하면 충효도 나고 관직도 난다 산세가 후부(厚富)하고 주위가 풍만(豊滿)하면 부자가 나고, 지엽이 많으면 자손이 많고, 명산의 등차는 그 위치로부터 주산, 래룡, 혈판, 보국, 원근사격범위의 형세에 따라 결정된다.

 

(2) 대지

1) 안정성
건물은 안전한 대지 위에 세워야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안전한 분위기를 만들게 한다. 안전한 대지라면 그 대지가 위치한 곳은 물론 대지의 주위까지도 안정된 평탄한 곳을 말하며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을 곳을 말한다. 이러한 곳은 바람이 스스로 그 형태에 따라 안정되고 일월성신(日月星辰)의 빛까지도 바르게 비추오니 거기에 사는 사람도 그 환경에 따라서 마음이 바르고 기상이 밝아 스스로 행복하여 진다. 우리 인간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형사에 그가 사는 보금자리로 말미암아 후천적인 기상이 변하여 지므로 사람은 누구나 희망을 갖고 살아가게 된다. 동호제현께서는 누구의 말을 믿기 보다 실습으로 眞否를 가름하여 우리의 주관자가 여기에 있음을 알고 더욱 희망을 가져 주기 바란다.
반대로 불안한 대지에는 그 위치한 대지는 물론이요, 그 대지가 위치한 곳으로부터 그 주위까지 모두 피해를 주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중요한 일이 곧 풍수지리이다.

 

2) 형 태
건물이 들어설 대지는 그 모양이 네모 반듯하여 단정한 형태라야 좋은 것이다. 그러나 대지는 그 모양이 여러 가지가 있다. 삼각형이거나 불규칙한 형태의 대지는 좋지 않다. 이상적인 대지의 형태는 대지의 四변이 바르고 올바른 사각형으로 마당과 건물의 넓이도 서로 큰 차이가 없는 것이 좋다. 다시 말하면 보기 좋은 대지는 길하고 보기 흉한 대지는 흉한 것이다. 반대로 불길한 대지의 형태는 대지가 삼각형이거나 불균형인 대지를 말한다.

 

 

4. 풍수의 기원과 의미
◎ 풍수의 기원
사람이 살기에는 따뜻한 바람이 불고 깨끗하고 맛있는 물이 풍부한 지역이라야 한다.
따라서 먼 옛날부터 주거지를 선택할 때 사람들은 바람과 물의 여건을 따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지세를 관찰하는 작업이 곧 풍수를 보는 일로 인식되었고 풍수라는 말은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시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풍수(風水)라는 말은 중국의 곽박(郭璞. 276-324)이 쓴 『장경(葬經)』에 "장풍득수(葬風得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의 약자로 풍수라는 용어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장풍득수 이론에는 풍수지리의 전체적인 내용이 함축되어 있으므로 오히려 장풍득수라는 말은 풍수지리가 이론적으로 상당히 발달된 시점에서 사용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을 듯 하다. 풍수지리는『주역』의 이론과 음양오행설이 결합하면서 더욱 완벽한 체계를 이루게 된다.

 

◎ 우리나라 풍수의 역사
우리나라의 풍수지리는 신라 말기 도선에 의해 중국에서 도입된 것이라는 주장이 많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미 단군시대부터 사용되어 삼국시대에는 민간인들까지 풍수를 이용하여 이후 우리민족 생활 전반에 걸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한반도의 지리적 조건, 특히 산이 대부분인 지형으로 인해 산에 대한 체험과 이용을 기반으로 산신숭배사상과 함께 자연스럽게 풍수지리를 이용하고 발전시켜 온 것이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 특히 많은 옛 고대의 고인돌을 살펴보면 대부분 산의 정상으로부터 평지로 연결되는 능선 위에 위치해 있고 배산임수를 이루고 있는데, 이러한 고인돌의 입지기준은 후대에 전해져 삼국시대의 왕릉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이미 풍수지리를 이용했음을 보여 준다.

또 단군이 처음 신시를 건설하게 된 과정의 기록을 보면 "환웅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람들을 다스리고자 땅으로 내려갈 즈음, 하늘로부터 지세를 살펴보고 삼신산인 한밝산이 가히 사람을 유익하게 만들 수 있는 장소라고 판단되어, 천부인 3개와......"라는 기록이 있어 그 당시 이미 풍수지리가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고구려 시대의 벽화에도 단군 시대의 사상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으며 신라의 석탈해에 대한 기록 등에서 이미 삼국시대에는 일반인들 사이에 풍수지리가 널리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풍수지리의 발상지는 지리적 조건이나 단군 시대의 환역, 그리고 오행설의 시초 등을 고려하여 살펴볼 때 중국보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 풍수의 의미
풍수는 바람과 물을 생활속에 끌어들여 그것을 지리적인 조건에 맞춰 해석하고 응용하여 생활하는 방법을 정립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풍수지리는 음양오행의 상생과 상극의 원리에 따라 사람의 삶과 죽음에 적용하여 음택(陰宅. 죽은 사람이 묻히는 곳)이론과 양택(陽宅)이론을 중심으로 발전되어 우리 민족의 생활양식과 죽음의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최근에는 이를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연구하고 이해하여 건축이나 인테리어, 기타 생활과 주거에 적용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풍수지리를 단순히 발복을 위한 묘지(명당)를 위한 수단으로 치부하지 않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가장 쾌적하고 좋은 주거 환경이나 생활문화를 가꾸기 위한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매김될 때 풍수의 진정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한다.

 

 

5. 화장의 풍수지리적 의미
명당에 대한 소망과 뿌리 깊은 매장 문화로 전국토가 묘지화되어 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묘지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어 정부와 지자체 등에서는 매장(묘지)에 대한 각종 억제책과 함께 화장을 적극 장려하고 각종 지원책도 시행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일반인들의 화장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화하면서 화장률도 매년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면 풍수지리의 측면에서 볼 때 화장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결론은 한마디로"무해무익(無害無益) 하다" 고 한다. 즉 아무런 해도 없고 또한 이득도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매장과 비교하여 어느 쪽이 유리하다고 할 수 있을까? 명당이라고 하는 묘지 중 실제 명당은 매우 적고 이로움과 해로움이 비슷한 경우가 일부이며 오히려 해로움이 더한 묘지가 상당수라는 게 통설이다. 더구나 명당이라 해도 관리가 부실하여 유실, 파손이 되거나, 혹은 주변의 개발로 지형이 바뀌게 되면 역으로 해가 될 가능성도 상존한다.. 결국 명당보다는 해로움이 많은 곳에 묘를 쓸 확률이 훨씬 많을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대부분 천하명당은 아니더라도 좋은 자리를 살펴 묘를 쓰겠지만, 과연 화장보다 더 이로운 결과일 가능성은 어느 정도가 될지 의문이다.


 

6. 생활속의 풍수
◎ 주택
● 주택 면적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가.
주택의 1인당 적정면적은 6평 정도로 4인 가족을 기준으로 24평 정도가 알맞다. 너무 넓어 빈방이 많으면 허전함과 불편함을 주고 생기가 돌지 않아 풍수상 흉하다. 사람이 살면서 약간 비좁게 느껴지는 정도의 주택이 발전하는 집이다.

● 안방은 어떻게
안방은 생기가 모이는 집안의 중심에 설치하며 안방과 침실도 겸하는 것이 좋다. 침실을 따로 두어 안방을 취침시에 빈 상태로 두는 것은 좋지 않기 때문이다. 풍수로 볼 때 안방이 약간 어두워야 재물이 쌓인다.

● 현관의 위치와 문여는 방향
현관을 주택 모서리나 끝부분에 설치하는 것은 좋지 않다. 현관은 집안 내부의 생기가 모이도록 하는 곳이므로 주택의 중심축을 기준으로 설치하는 것이 좋으며 문을 여는 방향도 밖에서 안쪽으로 열리도록 설계하는 것이 외부의 생기를 집안으로 받아들인다는 측면에서 좋다.

● 거실과 천장
주택의 중심에 위치하도록 하여 내부 기운의 중심이 모이도록 하고 천장은 가운데 부분이 높고 좌우측을 낮게하여 기운이 집중되도록 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 화장실
가급적 중심에서 벗어난 구석에 배치한다. 외부에 화장실이 있는 경우 특히 현관 근처에 있는 것은 좋지 않다.

● 창문
창문은 아담한 것이 좋다. 지나치게 크면 실내 기운이 밖으로 분산되어 생기가 부족하게 된다. 위치는 벽 중심의 상부가 최적이다.

● 계단실
2층 구조의 내부 계단은 계단실 입구에 출입문을 설치하는 것이 좋다.

● 아파트의 로열층
풍수상으로 아파트의 로열층은 보통 5층 이하로 본다. 그 이상은 땅의 생기로부터 멀어져 좋지 않다.

◎ 실내 인테리어
주택의 구조가 좋지 않다고 모두 다 뜯어 고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이를 내부의 인테리어로 보완할 수는 있다.

● 화초
집안의 화초는 매우 좋다. 내부에 좋은 기를 공급하여 생기를 돋운다. 단 너무 키가 큰 관상수나 과다한 수의 화초는 오히려 좋지 않다.

● 거울
거울은 가급적 큰 것이 좋다. 작은 거울을 여러 곳에 걸지 않는다. 깨지거나 흠결이 있는 거울은 집안에서 속히 치운다. 현관 정면으로 마주보는 거울은 좋지 않다.

● 조명, 커튼
조명이나 커튼의 색상이나 밝기에 따라 충분한 연출이 가능하고 구조의 흉함을 보완할 수 있다. 가장 쾌적하고 편안함을 느낀다면 풍수적으로도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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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시 풍천면 낙동강변에 자리한 하회마을은 현재 풍산 류씨들이 모여 살고있는 전통 마을이다.

태백 검룡소에서 발원한 낙동강은 이곳에 이르러 여러 번 크게 휘돌아가는데,

하회(河回)는 ‘물이 빙 돌아나간다’는 뜻으로‘물도리동’이라고도 한다.

풍수에선 백두대간에서 뻗어온 지맥인 화산(321m)과

낙동정맥에서 뻗어나온 지맥인 부용대를 낙동강이 감싸고 돌아가므로

산태극 수태극의 길지로 보았고, 물에 연꽃이 떠있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의 명당이라고 여겨왔다.

가만히 지형도를 놓고 보면

화산을 정점으로 이루어진 물도리동의 형세는 이 나라 으뜸의 전통마을답게 버선을 닮기도 했다.

 

*[風水] - 풍수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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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래기(葬)

2008. 1. 10.

[조각 모음]

 

 

*풍수(風水)*

 

[펌] http://www.funeraln.com/main/information/e1.html

 

 

 

 

1. 풍수설(風水說)의 유래
사실 풍수 사상이 하루아침에 이룩된 것은 아니다. 아마 중국 황하 유역에서 바람과 물을 가려 삶에 알맞은 곳을 택한 것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확고한 관념으로 발전되고 점차 현실적인 면에서 정신적인 문제로 원시신앙이나 음양사상 같은 것이 바로 오늘날의 풍수사상으로 발전하여 진 것같으나 정확함은 알 수 없고 다만 우리 나라 유적가운데 반월성(半月城) 만월성(滿月城) 같은 이름은 모두 풍수 사상에서 붙여진 것이라 믿어진다.
삼국유사의 신라 석탈해왕에 관한 기록을 보면 왕이 평민의 동자로 있을 때 이른바 초생달 모양으로 생긴 곳에 집을 지어 살았다. 그후 신라2대 남해왕이 그 인물이 출중한 것을 알고 나라의 장래를 맡기기로 생각하여 그의 맏공주와 결혼을 시켰다. 그는 얼마 뒤 석탈해라는 이름을 얻고 신라 제4대왕이 되었다고 한다. 이는 곧 살기 좋은 곳 다시 말하여 명당에 살았기 때문에 복을 받아 왕까지 되었다고 신라인들 사이에 오고 가는 말이 이었다 한다 그것은 아마 그 당시 풍수사상에서 비롯된 것 같다고 여겨진다. 이로 미루어 보아 풍수사상은 삼국시대로부터라고 생각되며 체계화된 것은 통일신라시대의 서기676년부터 고려 건국초인 서기 918년경이 아닌가 여겨진다.

사기요람(史記要覽) 제왕편을 보면 태고에 복희씨가 팔방을 정 하였으며, 그후 서기전 약 3000년경에 헌원씨가 지남거(指南車)를 만들어 방위를 분별하였다고 하니 이것이 지남철의 시초인 것 같다. 서기전 1122년 중국 문왕이 지남철을 사용하였다고 하나 만든 사람은 밝혀져 있지 않다. 협기음양서를 보면 서기 1683년 청나라 강희 22년 인황제(仁皇帝)가 역대 음양법을 종합수집하고 지남거를 성윤도철로 제작하였다고 한다. 아마 우리나라에는 중국으로부터 들어와서 삼국시대초에 사용되었다고 여겨진다.

우리 인간 생활에는 이와 같이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 생물과 자연관계를 다루는 학문이 곧 풍수지리라 할 수 있다.

 

 

2. 음양과 오행
우주를 곧 천지라 하며 천지가 곧 음양인 것이다. 천지가 순환 하메 춘·하·추·동의 네 계절이 생기고, 그 네 계절이 생기매 24절기가 생기고, 이에 동서남북의 4방위가 생하고, 4방위 사이에 각각 간 방을 붙이니 8방이 된다. 이 8방을 절기에 맞추어 24방위로 나눈다.(8방을 중심으로 좌우로 세분하여 한 방위를 3으로 나누니, 24방위가 된다)

4계절을 1년으로, 1년을 12개월로, 1개월을 30일로, 이는 우주의 순환과 달의 운수에 따라 정한 것이다.

수·화·금·목·토 오행이 생기고 60갑자를 만들어 일월의 운회(運會)를 알고 24방위를 가늠하는 법칙을 제정할 수 있게 되었다.

천지를 정음(正陰) 정양(正陽)으로 구분하고, 24방위에는 천간과 지지를 붙이고 오행을 배치하여 춘?하추?동과 24절기를 포함하여 하나의 원리를 만들어낸 것이니, 24방위를 임자(壬子) 계축(癸丑) 간인(艮寅) 갑묘(甲卯) 을진(乙辰) 손사(巽巳) 병오(丙午) 정미(丁未) 곤신(坤申) 경유(庚酉) 신술 (辛戌) 건해(乾亥)로 정하고 임자계인갑을진오곤신술건(任子癸寅甲乙辰午坤申戌乾) 12방은 양방(陽方)으로 태양이 가장 많이 쪼이는 방위로 하며 축 간묘손사병정미경유신해(丑艮卯巽巳丙丁未庚酉辛亥)는 음의편으로 그늘이 가장 많이 지는 12음방으로 정하였다.

하락(河洛)의 수를 오행에 배정하여 북의 1 ?6수와, 동의3·8목과, 남 2·화와, 서의 4·9금과, 중앙의5·10토로 나누고 이중에서 1,3,5,7,9수를 양의 수로 2,4,6,8,10의 수를 음의 수로 책정하여 팔괘(八卦)의 기본수를 만들었다. 여기서 수목화금토의 음양오행의 상생상극의 원리가 도출되었다. 왜 북을 자(子)라고 하였으며 수라고 하였는가 지구는 자체가 자석이므로 북은 지구의 축(軸)이 되며 자는 비로소 양이 시작되는 점(시간으로 0시)에 해당하는 동지9冬至)의 방위이다 또 수(水)란 천지가시작될 때 제일 먼저 물이 생겼다고(천일생수,天一生水)하여 만물은 물로써 생하는 이치를 적용하였기 때문에 북을 자(子)라고 하고 수의 위치로 정하였던 것이다.

동을 목이라 한 것은 지구의 자전으로 태양이 동쪽에서 뜨게 되었기 때문에 제일먼저 햇빛의 따뜻한 기운을 받기 시작하여 수목의 생장이 촉진되므로 그 이치에 따라 수생목이라 목을 동에 배정한 것이다. 남을 화의 위치로 한 것은 한 여름 화기를 받아 수목이 무성하게 되므로 이 이치에 쫓아 목생화로서 화를 남방에 속하게 한 것이다. 서를 금이라 함은 결실된 오곡백과가 누렇게 익어 온 천하가 황금빛을 갖게하는 고로 토생금으로 서에 금을 속하게 한 것이다. 만물은 토에서 생성함으로 동서남북 아무 곳에나, 무처불입(無處不入) 하는 고로, 낙엽이 떨어져 뿌리에 영양을 주고 과실이 떨어져 흙에서 싹이 나는 이치에서 토를 중앙에 속하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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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명 당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데는 살기 좋은 명당을 구하여야만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명당도 그 목적에 따라 각각 다르다. 다시 말하자면 수도를 정하고자 하는 사람은 수도적 지리여건이 알맞은 곳을 택할 것이요 공장을 짓고자 하는 사람은 공업적 지리여건이 알맞은 곳을 택할 것이며, 농사를 짓고자 하는 사람은 농업적 지리여건이 알맞은 곳을 택할 것이고, 나무를 심고자 하는 사람은 식수적 지리여건이 알맞은 곳을 택할 것이요, 집을 짓고자 하는 사람은 생활적 지리여건이 알맞은 곳을 택할 것이니, 이는 예나 지금이나 풍수지리를 알고 생활하여온 산 증거이다.

우리 인간은 자연 속에 살다 죽어 가는 것이 자연의 원리이다. 살아서도 자연 속에, 죽어서도 자연 속에, 우리 인간은 자연을 떠나서는 살수 없다. 살아서 사는 곳은 그 주위의 형세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수 있 거니와, 죽어서 묻힌 그곳은 영원한 하나의 잠자리로 주위환경 생긴 대로 사상보국형세 따라 길하면 길한 대로 흉하면 흉한 대로 백골이 변하여 가니 식물에 비유하면 꽃과 같다.

음택지는 양택지와 달리 천리행룡(千里行龍) 일석지(一席地)로 한 송이 꽃이 되며 그 꽃의 밑씨가 곧 혈의 핵심이 될 것이다. 그 혈에 백골이 삽입되어야 그 정기가 후손에게 결과를 부여한다. 혈에 조상의 백골을 모셨다 함은 꽃이 열매를 맺는 단계와 같다. 그 혈의 정기의 농도는 일정 하지 않다. 그 혈의 범위에서 그 혈이 맺어 질 수 있는 주봉 및 래룡과 주위의 형태에서 발생한 정기 등으로 후손들의 인격적인 등차가 생긴다.

 

(1) 관산론(산 살피기)

1) 살피는 요점

가) 길산과 흉산을 살펴 왕한 기운과 쇠잔한 기운을 구별하고
나) 길한 물과 흉한 물을 살펴 맑음과 흐림을 구별하고
다) 보국의 범위와 안정됨을 살펴 왕기와 쇠기를 구별하고
라) 흉토와 길토를 보아 강하냐 무르냐를 살피고
마) 돌과 바위의 길하고 흉한 것까지를 보아야 한다.
바) 주산의 위엄과, 래용의 변화 및 기세와, 룡호의 자세와. 안산의 응기와, 주위의 정밀을 보아 혈의 진가(眞假)를 판단하나 또 혈판이 이에 대비되어야 한다.

2) 길산

명산(明山)이라 하는 것은 산수풍이 서로 상생 상합하여 모두 길하게 보이는 것을 명산이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길산이라 함은 보산보국(保山保局)이 잘되고, 모두 급기(急氣)를 벗고, 위엄(威嚴)도 있고, 서기(瑞氣)도 나며, 산과 물과 바람이 서로 엉겨 안정한 자세를 이루면 바람도 이에 따라 길풍이 되고, 물도 이에 따라 길수가 되며, 초목도 이에따라 윤택하고, 사람도 이에 따라 흥하게 된다. 이것이 곧 지기(地氣)가 상승(上昇)하고 천기(天氣)가 하림(下臨)하는 자연원리 이며 이를 곧 자연이라 하는 것이다.
산이 양명(陽明)하고 순응(順應)하면 충효도 나고 관직도 난다 산세가 후부(厚富)하고 주위가 풍만(豊滿)하면 부자가 나고, 지엽이 많으면 자손이 많고, 명산의 등차는 그 위치로부터 주산, 래룡, 혈판, 보국, 원근사격범위의 형세에 따라 결정된다.

 

(2) 대지

1) 안정성
건물은 안전한 대지 위에 세워야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안전한 분위기를 만들게 한다. 안전한 대지라면 그 대지가 위치한 곳은 물론 대지의 주위까지도 안정된 평탄한 곳을 말하며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을 곳을 말한다. 이러한 곳은 바람이 스스로 그 형태에 따라 안정되고 일월성신(日月星辰)의 빛까지도 바르게 비추오니 거기에 사는 사람도 그 환경에 따라서 마음이 바르고 기상이 밝아 스스로 행복하여 진다. 우리 인간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형사에 그가 사는 보금자리로 말미암아 후천적인 기상이 변하여 지므로 사람은 누구나 희망을 갖고 살아가게 된다. 동호제현께서는 누구의 말을 믿기 보다 실습으로 眞否를 가름하여 우리의 주관자가 여기에 있음을 알고 더욱 희망을 가져 주기 바란다.
반대로 불안한 대지에는 그 위치한 대지는 물론이요, 그 대지가 위치한 곳으로부터 그 주위까지 모두 피해를 주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중요한 일이 곧 풍수지리이다.

 

2) 형 태
건물이 들어설 대지는 그 모양이 네모 반듯하여 단정한 형태라야 좋은 것이다. 그러나 대지는 그 모양이 여러 가지가 있다. 삼각형이거나 불규칙한 형태의 대지는 좋지 않다. 이상적인 대지의 형태는 대지의 四변이 바르고 올바른 사각형으로 마당과 건물의 넓이도 서로 큰 차이가 없는 것이 좋다. 다시 말하면 보기 좋은 대지는 길하고 보기 흉한 대지는 흉한 것이다. 반대로 불길한 대지의 형태는 대지가 삼각형이거나 불균형인 대지를 말한다.

 

 

4. 풍수의 기원과 의미
◎ 풍수의 기원
사람이 살기에는 따뜻한 바람이 불고 깨끗하고 맛있는 물이 풍부한 지역이라야 한다.
따라서 먼 옛날부터 주거지를 선택할 때 사람들은 바람과 물의 여건을 따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지세를 관찰하는 작업이 곧 풍수를 보는 일로 인식되었고 풍수라는 말은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시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풍수(風水)라는 말은 중국의 곽박(郭璞. 276-324)이 쓴 『장경(葬經)』에 "장풍득수(葬風得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의 약자로 풍수라는 용어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장풍득수 이론에는 풍수지리의 전체적인 내용이 함축되어 있으므로 오히려 장풍득수라는 말은 풍수지리가 이론적으로 상당히 발달된 시점에서 사용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을 듯 하다. 풍수지리는『주역』의 이론과 음양오행설이 결합하면서 더욱 완벽한 체계를 이루게 된다.

 

◎ 우리나라 풍수의 역사
우리나라의 풍수지리는 신라 말기 도선에 의해 중국에서 도입된 것이라는 주장이 많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미 단군시대부터 사용되어 삼국시대에는 민간인들까지 풍수를 이용하여 이후 우리민족 생활 전반에 걸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한반도의 지리적 조건, 특히 산이 대부분인 지형으로 인해 산에 대한 체험과 이용을 기반으로 산신숭배사상과 함께 자연스럽게 풍수지리를 이용하고 발전시켜 온 것이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 특히 많은 옛 고대의 고인돌을 살펴보면 대부분 산의 정상으로부터 평지로 연결되는 능선 위에 위치해 있고 배산임수를 이루고 있는데, 이러한 고인돌의 입지기준은 후대에 전해져 삼국시대의 왕릉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이미 풍수지리를 이용했음을 보여 준다.

또 단군이 처음 신시를 건설하게 된 과정의 기록을 보면 "환웅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람들을 다스리고자 땅으로 내려갈 즈음, 하늘로부터 지세를 살펴보고 삼신산인 한밝산이 가히 사람을 유익하게 만들 수 있는 장소라고 판단되어, 천부인 3개와......"라는 기록이 있어 그 당시 이미 풍수지리가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고구려 시대의 벽화에도 단군 시대의 사상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으며 신라의 석탈해에 대한 기록 등에서 이미 삼국시대에는 일반인들 사이에 풍수지리가 널리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풍수지리의 발상지는 지리적 조건이나 단군 시대의 환역, 그리고 오행설의 시초 등을 고려하여 살펴볼 때 중국보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 풍수의 의미
풍수는 바람과 물을 생활속에 끌어들여 그것을 지리적인 조건에 맞춰 해석하고 응용하여 생활하는 방법을 정립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풍수지리는 음양오행의 상생과 상극의 원리에 따라 사람의 삶과 죽음에 적용하여 음택(陰宅. 죽은 사람이 묻히는 곳)이론과 양택(陽宅)이론을 중심으로 발전되어 우리 민족의 생활양식과 죽음의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최근에는 이를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연구하고 이해하여 건축이나 인테리어, 기타 생활과 주거에 적용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풍수지리를 단순히 발복을 위한 묘지(명당)를 위한 수단으로 치부하지 않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가장 쾌적하고 좋은 주거 환경이나 생활문화를 가꾸기 위한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매김될 때 풍수의 진정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한다.

 

 

5. 화장의 풍수지리적 의미
명당에 대한 소망과 뿌리 깊은 매장 문화로 전국토가 묘지화되어 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묘지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어 정부와 지자체 등에서는 매장(묘지)에 대한 각종 억제책과 함께 화장을 적극 장려하고 각종 지원책도 시행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일반인들의 화장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화하면서 화장률도 매년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면 풍수지리의 측면에서 볼 때 화장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결론은 한마디로"무해무익(無害無益) 하다" 고 한다. 즉 아무런 해도 없고 또한 이득도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매장과 비교하여 어느 쪽이 유리하다고 할 수 있을까? 명당이라고 하는 묘지 중 실제 명당은 매우 적고 이로움과 해로움이 비슷한 경우가 일부이며 오히려 해로움이 더한 묘지가 상당수라는 게 통설이다. 더구나 명당이라 해도 관리가 부실하여 유실, 파손이 되거나, 혹은 주변의 개발로 지형이 바뀌게 되면 역으로 해가 될 가능성도 상존한다.. 결국 명당보다는 해로움이 많은 곳에 묘를 쓸 확률이 훨씬 많을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대부분 천하명당은 아니더라도 좋은 자리를 살펴 묘를 쓰겠지만, 과연 화장보다 더 이로운 결과일 가능성은 어느 정도가 될지 의문이다.


 

6. 생활속의 풍수
◎ 주택
● 주택 면적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가.
주택의 1인당 적정면적은 6평 정도로 4인 가족을 기준으로 24평 정도가 알맞다. 너무 넓어 빈방이 많으면 허전함과 불편함을 주고 생기가 돌지 않아 풍수상 흉하다. 사람이 살면서 약간 비좁게 느껴지는 정도의 주택이 발전하는 집이다.

● 안방은 어떻게
안방은 생기가 모이는 집안의 중심에 설치하며 안방과 침실도 겸하는 것이 좋다. 침실을 따로 두어 안방을 취침시에 빈 상태로 두는 것은 좋지 않기 때문이다. 풍수로 볼 때 안방이 약간 어두워야 재물이 쌓인다.

● 현관의 위치와 문여는 방향
현관을 주택 모서리나 끝부분에 설치하는 것은 좋지 않다. 현관은 집안 내부의 생기가 모이도록 하는 곳이므로 주택의 중심축을 기준으로 설치하는 것이 좋으며 문을 여는 방향도 밖에서 안쪽으로 열리도록 설계하는 것이 외부의 생기를 집안으로 받아들인다는 측면에서 좋다.

● 거실과 천장
주택의 중심에 위치하도록 하여 내부 기운의 중심이 모이도록 하고 천장은 가운데 부분이 높고 좌우측을 낮게하여 기운이 집중되도록 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 화장실
가급적 중심에서 벗어난 구석에 배치한다. 외부에 화장실이 있는 경우 특히 현관 근처에 있는 것은 좋지 않다.

● 창문
창문은 아담한 것이 좋다. 지나치게 크면 실내 기운이 밖으로 분산되어 생기가 부족하게 된다. 위치는 벽 중심의 상부가 최적이다.

● 계단실
2층 구조의 내부 계단은 계단실 입구에 출입문을 설치하는 것이 좋다.

● 아파트의 로열층
풍수상으로 아파트의 로열층은 보통 5층 이하로 본다. 그 이상은 땅의 생기로부터 멀어져 좋지 않다.

◎ 실내 인테리어
주택의 구조가 좋지 않다고 모두 다 뜯어 고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이를 내부의 인테리어로 보완할 수는 있다.

● 화초
집안의 화초는 매우 좋다. 내부에 좋은 기를 공급하여 생기를 돋운다. 단 너무 키가 큰 관상수나 과다한 수의 화초는 오히려 좋지 않다.

● 거울
거울은 가급적 큰 것이 좋다. 작은 거울을 여러 곳에 걸지 않는다. 깨지거나 흠결이 있는 거울은 집안에서 속히 치운다. 현관 정면으로 마주보는 거울은 좋지 않다.

● 조명, 커튼
조명이나 커튼의 색상이나 밝기에 따라 충분한 연출이 가능하고 구조의 흉함을 보완할 수 있다. 가장 쾌적하고 편안함을 느낀다면 풍수적으로도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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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시 풍천면 낙동강변에 자리한 하회마을은 현재 풍산 류씨들이 모여 살고있는 전통 마을이다.

태백 검룡소에서 발원한 낙동강은 이곳에 이르러 여러 번 크게 휘돌아가는데,

하회(河回)는 ‘물이 빙 돌아나간다’는 뜻으로‘물도리동’이라고도 한다.

풍수에선 백두대간에서 뻗어온 지맥인 화산(321m)과

낙동정맥에서 뻗어나온 지맥인 부용대를 낙동강이 감싸고 돌아가므로

산태극 수태극의 길지로 보았고, 물에 연꽃이 떠있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의 명당이라고 여겨왔다.

가만히 지형도를 놓고 보면

화산을 정점으로 이루어진 물도리동의 형세는 이 나라 으뜸의 전통마을답게 버선을 닮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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